국립국어원: 알다의 명사형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주위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그달의 명칭을 정했다고 한다.(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중) 그들은 12월을 늙은이 손가락 달, 첫 눈발이 땅에 닿는 달, 다른 세상의 달 등으로 불렀다. 내게 12월은 어떤 달일까? 작년과 다른 느낌인 12월을 나는 ‘애썼다며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은 달’이라 부르고 싶다.
식탁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2025년 탁상용 달력을 1월부터 넘겨봤다. 약속이나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으려 빽빽하게 기록하던 일지(日誌) 같다. 8월을 펼치자, 기차 시간과 병원 시간만 눈에 띈다. 약속이 잡혀있던 날에는 엑스가 그어져 있는 8월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봤다. 9월, 10월을 넘기자 엑스가 줄줄이 나왔다. 3차 병원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미 잡혀있던 여행, 만나기로 한 약속 등을 취소해서다. 11월 셋째 주부터는 취소했던 약속들이 하나 둘 적혀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12월이다.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났다. 내가 인천 ㅅ병원을 퇴원하고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게 벌써 세 달 전 일이 되었다. 그날 6박 7일 동안 보호자였던 딸은 사위가 기다리는 집으로 갔다. 요양병원은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방암으로 항암을 끝낸 내 또래 환자와 나보다 일주일 전에 대장암으로 수술 한 40대. 이렇게 셋이 한방을 썼다. 예기치 않은 ‘암’이란 벽을 만나 멈춰야 했던 각자의 생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두려움을 떨치려 애를 썼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나는 ‘암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를 즐겨 부르는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인천 ㅅ병원 외래를 방문하던 날. 새벽 기차로 달려온 딸을 병원에서 만났다.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마치고 딸과 나는 비뇨의학과 진료실로 갔다. 큰 봉투를 들고 예약된 순서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대기실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분들이 보였다. 지난 8월 ㅅ병원 진료실에 앉아있던 딸과 나의 모습 같았다.
인천 ㅅ병원에 딸이 진료 예약전화를 했을 땐 이미 9월 초까지 꽉 차 있었다. 간절한 딸의 목소리에 교수님이 종일 진료를 보는 금요일. 혹시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현장 접수 후 대기해 보라고 했단다. 딸은 나에게 명품 오픈런을 하듯 병원을 향해 달려보자 했다. 여전히 ‘멍’ 한 상태였던 나는 딸이 이끄는 대로 새벽 1시 40분 인천 공항버스를 탔다. 캐리어를 끌고 여행지에 대한 설렌 마음으로 갔던 공항이 병원을 가기 위한 중간 도착지가 된 것이다. 공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렸다. 딸은 접수 대기 번호 6번을 나에게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접수하고 서울 A 병원에서 찍은 ‘MRI’ CD를 능숙하게 등록까지 마친 딸은 진료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린 3차 병원 진료를 위한 자료가 담긴 큰 봉투를 손에 들고 서성거렸다. 예약된 시간에 호명되는 분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행여 내 이름을 부를까 봐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렸던 첫 진료일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월요일 아침. 나는 오픈런을 성공한 딸 덕분에 수술한 지 12일이나 된지라 큰 봉투를 들고 서성거리는 분들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 마법을 걸듯 ‘아닐 거야’만 마음속으로 외쳤다.
여름 내내 순례했던 일곱 군데 병원 중 네 곳에서는 신장암 3기일 거라며 전체 절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삶의 질을 위해 부분 절제를 도전해 보자던 세 곳. 꼼꼼한 딸은 집요한 질문과 검색을 한 후 부분 절제가 가능하다는 인천 ㅅ병원을 나에게 권유했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오른쪽 신장 부분 절제술을 마쳤다. 수술 후 12일 만에 조직 검사 결과와 아침에 했던 검사 결과는 진료 예약시간보다 3시간이 지나서야 듣게 되었다. 나의 바람과 다르게 '종양 크기가 3.7cm인 신세포암 1기'였다. 그래도 항암치료는 필요하지 않고(신장은 항암치료가 무의미해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했던 검사 결과도 좋으니 다행이란다. 오른쪽 신장과 방광을 보호하기 위해 삽입한 스텐트는 50일 후에 제거하자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진료를 마쳤다.
내가 ㅅ병원에서 퇴원할 때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가퇴원을 했었다. 수납창구에서 가퇴원금을 정산하고 있는 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핸드폰이 떨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당신은 산정특례 5% 대상자'라는 문자였다. 나는 국가에 등록된 암 환자가 된 거다. 예상은 했지만, 거부하고 싶던 ‘암’이란 단어가 나를 다시 컴컴한 어둠 속으로 데리고 가는 듯했다.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광명역에 도착한 딸과 나는 앞으로도 쭉 몸 관리 잘하자며 헤어졌다. 추석 연휴 전 월요일이라 만석인 KTX를 타고 딸은 마산으로 나는 순천으로 달렸다. 순천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동생 부부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집으로 왔다. 집안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것들이 ‘떼어 냈으니 이젠 기운만 차리면 된다.’라며 위로하며 반겼다. 나는 앎이 주는 무게가 무겁고 두려웠지만, 익숙하고 포근한 내 집에서 시작될 시간이 두근거렸다. 그날 밤 요동치는 가슴을 끌어안고 밤새 꿈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 60대 환자가 경험을 통해 느낀 젊은 보호자의 장점과 단점>
* 장점
- 검색이 빠르다.(병원, 교통편, 맛집 예약을 순간 해냄.)
- 처음 3차 병원 방문 때 접수를 마치자마자 가져간 자료 등록을 후다닥 해낸다.
- 의료진 말이 끝나자마자 이해하며 속사포로 질문을 한다.
- 언제 어디서라도 환자 손발이 돼준다.
- 학위 없는 박사가 되어 '멍'한 상태의 환자를 이끌어준다.(참고로 저는 간호학을 전공했습니다.)
** 단점
- 환자는 계속 '멍'한 상태가 될 확률이 높다.
- 좋다는 것을 수시로 사줘 집 앞에 택배상자가 쌓여간다.
- 시도 때도 없이 전화, 문자, 방문을 해서 즐기던 불량식품 먹기가 어렵다.^^
- 시간이 갈수록 환자 자신이 보호자보다 어리거나, 공주인 줄 착각한다.(딸과 사위가 부르는 저의 애칭이 '만수무光姬 공주님'이 돼버렸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