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희미해지던 평범이란 단어

by 김광희

고등학교 2학년 초. 한 달 동안 내 짝꿍이던 친구가 덩치에 비해(젖살이 많던 시기라 ㅎㅎ) 뱃살이 없다며 나를 뱃살 공주라 불렀다. 그 후 나는 그 이름을 종종 아이디로 사용했다. 브런치 스토리 필명도 뱃살 공주로 했다. 오늘 아침 걷기를 하다 문득 학교에 근무할 당시 아이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생각났다. 회복기에 접어든 나에게도 그때 하던 대로 하고 싶어 필명을 '뱃살 공주'에서 내 이름으로 바꿨다.


"내가 너 이름을 부르면 너는 춤을 추거라."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작명소에서 이것저것 따지면서 지었을 비싼 이름을 불렀으니 대답이라도 하자.'라는 말을 자주 했다. 대부분 시큰둥했지만, 이름을 부르자마자 대답을 하면서 춤을 춰 한바탕 웃게 해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운동장이나 복도, 심지어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다가도 내가 보이면 뛰어와 이름을 불러달라던 녀석도 있었다. 녀석은 내가 이름을 부르면 대답과 동시에 팔다리를 흔들었다. 주변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웃든 말든 막춤을 추면서 내 이름을 외쳤다.

"광희 쌤! 광희 쌤!"

나는 대답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고 그 아이처럼 막춤을 췄다. 짜증 섞인 욕설에 상처받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으로 돌아가 싱그러운 아이들과 함께 실컷 웃고 싶다.


나는 앞으로 쭉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아니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막춤을 추며 크게 웃을 것이다.


춤 연습을 하듯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기지개를 켠다. 혹시 숨겨진 키가 있다면 나오라고 소리라도 지르는 것처럼 침대 위쪽으로 힘껏 양팔을 올린다. 동시에 두 발은 밤새 별일 없냐고 안부를 물으며 끄덕끄덕. 하지만, 수술 후 이런 평범한 아침을 시작하지 못했다. 혹시나 피부접착제(본드)로 봉합된 수술 자국이 터질까 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때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토끼가 뛰쳐나오려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복부에 훈장처럼 남아있는 여섯 개의 자국을 쓰다듬으며 ‘조금만 참자.’라며 토끼를 달랬다. 오른손을 지지대 삼아 삐딱하게 침대 위에 앉아있는데 왼쪽 어깨가 뻐근하다. 수술 시 복부를 부풀리기 위해 주입했던 이산화탄소는 벌써 배출되었을 건데. 벽을 바라보고 자야 깊은 잠을 자는 내가 오른쪽 신장 부분 절제술 후 감히 오른쪽으로 눕지 못해 계속 왼쪽으로만 누워 자서인가 보다. 뻐근함을 풀어보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잡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곧 외래 진료 일이 다가오니 그때까지 잘 견뎌봐야겠다.


드디어 11월 10일 인천 ㅅ병원에 두 번째 진료를 다녀왔다. 진료 일주일 전 신장, 폐 CT 검사를, 진료 당일엔 신장 스캔, 소변, 피검사를 했다. 신장과 방광 보호를 위해 두 달 동안 지니고 있던 스텐트(관)도 제거했다. 수술 후 복부 유착 예방을 위해 걷다 보면 가끔 오른쪽 복부를 찌르거나 혈뇨를 유발해 두려움을 주던 스텐트를 빼고 나니 개운했다. 거기에 검사 결과 신장 기능이 수술 전과 비슷하다고 하니 시들어버린 날개가 솟아오르려 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온 나는 몸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동안 애쓴 왼쪽 어깨를 토닥이며 오른쪽으로 살포시 누었다. 그날 밤부터 거북이를 누르고 튀어나오려던 토끼가 내 침대 위에서 다시 춤을 췄다.


다음 진료 일까지 흐릿하게 남아있을 두려움을 살살 달래며 달력을 폈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흔들거리며 친구들과 미루었던 약속을 다시 잡았다. 건강검진 후 3차 병원을 다니면서 급한 집안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약속, 여행 계획을 취소했는데. 나는 뜀박질하는 토끼처럼 친구들에게 느닷없이 환자가 된 사연을 쏟아냈다. 초조하고 두려웠던 그때 위로받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던 이유도 설명했다. 내가 말하는 순간 폭우처럼 쏟아질 눈물과 한숨이 나를 주저앉힐 것 만 같아서였다. 이제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으니 마치 불꽃 축제날처럼 환하게 친구들에게 알린 것이다. 날벼락같은 환자 소식에 친구들은 몇 초 동안 조용했다. 숨을 죽이며 들어준 친구들에게 나는 '덕분에 잘 회복되고 있으니 괜찮다'라며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었다.


역시 친구들과의 수다는 남아있는 두려움을 홀쭉하게 만들었다. 실컷 웃고 떠들다 보니 환자라는 단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그 기운을 이어받아 대중목욕탕을 갔다. 입원 전날 동생과 다녀온 목욕탕 물속으로 두 달 만에 몸을 담그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복부에 뚜렷하게 박힌 수술 자국을 힐끔거리면 어쩌나 했는데 그 또한 괜찮았다. 느긋하게 탕 안에서 눈을 감았다. 물 온도를 따라 점점 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동안 고생한 내 복부를 쓰다듬었다. 이젠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햇살이 퍼지는 시간. 실컷 기지개를 켠 나는 우리 집을 날아다니다 운동화 속으로 스며든 적막을 털어내고 집을 나선다. 복부 찌름이 없는 홀가분한 걸음으로 평범이란 일상으로 걸어간다. 회복기인 나와 다르게 여전히 큰 봉투를 들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3차 병원 진료실을 서성거리고 있을 분들께 보여주련다. 다시 찾은 내 평범한 하루와 늘 우리 곁에 있을 희망이란 막춤을 추면서 말이다.

keyword
이전 0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