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도 설렘이 되는 시간

떠난 자들이 두고 간 그리움

by 김광희

내가 본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시내 한복판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깔끔한 건물. 맞은편은 재개발을 앞둔 철거촌 같은 곳이었다. 화려함과 쓸쓸함이 마주하고 있다니. 작년 2월 나는 버스에 앉아 곧 쓰러질 것 같은 건물 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건물 중간중간 이슬람의 상징인 화려한 모스크가 보였다. 폐허일 법한 건물 옥상 빨랫줄엔 하얀 천들이 뿌연 먼지 속에 펄럭였다. 골목길엔 곧 기침이 터질 것 같은 모래 먼지 속에서 누런 개들과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먼지와 쓸쓸함에 휩싸인 그곳은 묘지 마을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묘지를 천장까지 갖춘 석조건물로 된 집처럼 만든단다. 덕분에 산 사람의 주거지로도 손색이 없어 카이로 시내 중심지에 있는 이곳으로 빈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무허가 촌이 형성되었다. 그조차도 하지 못한 일부 빈민들은 황량한 건물 앞 인도(人道)에서 노숙했다. 그렇게 그곳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함께하는 묘지 마을이 된 것이다.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산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죽은 자들과 함께하는 삶이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나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들이라 기도시간이면 어디에서라도 아잔(Azan)을 들으며 기도드리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새해 첫날이 지나고 딸 부부와 막냇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경북 경주에서 포항 가는 국도에 있는 기림사(祇林寺)를 찾았다. 30년 전 절 안쪽에 있는 야트막한 둔덕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날린 남편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울창한 숲이었던 곳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나는 매년 모른 척하며 올라갔다. 정확한 지점은 잊었지만 덤덤하게 눈인사라도 하고 와야 발 뻗고 깊은 잠을 잤다. 그곳에 간 김에 포항 친구들을 만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삼아 다니다 보니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올해 기일은 작년과 달리 좀 특별했다. 30이라는 숫자와 내가 ‘암’이라는 단어를 품게 되면 서다. 그날에 맞춰 시간을 내준 동생과 딸 부부를 앞세우며 나는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에 그늘막이던 나무는 가지만 남아 초라했다. 그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비쳤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 칼바람이 불었다. 장갑을 낀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플러를 목에 다시 감았다. 장갑 속에서도 시린 손가락을 빼내 뭉텅하게 주먹을 쥐며 중얼거렸다. ‘귀신이 되었으면 이런 날은 좀 따뜻하게 해 주지!'라고. 우리 넷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죽은 자를 가슴에 품고 기림사를 나와 밤새 흘러간 옛날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죽은 자를 찾아다니는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공동묘지에 모여드는 범죄자들과 묘지 안에 있는 유적 보존을 위해 2009년 묘지를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묘지에 사는 천 가구 이상의 빈민 가정을 해결하지 못해 카이로 시내에는 여전히 폐허처럼 묘지 마을이 있다. 그 후 지금까지도 카이로 시민들은 도로를 중심으로 화려함과 쓸쓸함을 공유하며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폐허 같은 묘지 마을을 정비할 것이다. 퇴직 후 살고 싶었던 곳처럼 꾸며 먼저 떠난 가족들을 모셔와야겠다. 문득 생각나면 슬리퍼를 신고 걸어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코가 벌렁거린다.


만약 내가 사는 동네에 죽은 자들의 공간인 묘지가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종종 뉴스에서 보던 대로 시끄럽겠지. 집값, 소음, 유해시설 등 갖가지 이유로 반대 데모를 해서 말이다. 영화 속 공원묘지는 깨끗하고 심지어는 아름답기까지 하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슬픔에 잠긴 공포 도시 같은 곳이다 보니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다. 모두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설 때 나라도 나서고 싶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스스럼없이 어울려사는 곳. 이집트 카이로 묘지 마을을 신시가지(新市街地)로 만들어 이곳에 두고 싶다.


그래서 내가 뒤쪽엔 산이 앞쪽엔 물이 보이는 곳에 땅을 사 평장묘(平葬墓)를 원칙으로 하는 묘지(墓地)를 만들어야겠다. 1 기당 0.3평 기준으로 가 쪽엔 키가 작은 나무를, 빛이 넉넉한 땅에는 경주 친구 부부가 사준 튼실한 딸기를 심으련다. 묘지 안쪽엔 방 한 칸 지어 내가 관리인이 되어 늘 음악이 흐르고, 커피 냄새와 달콤한 빵 냄새로 산 자들에게는 쉼을 선사하는 곳. 풍경이 아름다워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편안하게 산책을 나오는 곳. 연못에는 물고기도 키우는 도심 공원처럼 조성하련다. 공사가 끝나면 가족 봉안당에 계신 친정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내가 수술대에 누울 때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형부를 그곳 울타리 쪽으로 모셔야겠다. 그들보다 오래전에 떠난 남편은 입구 쪽에 방을 마련하여 묘지 지킴이를 시켜야겠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먼저 떠난 사람들이 여전히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을 돌봐줄 것 같은 따뜻한 공기가 맴도는 공원 같은 묘지를 이루겠다.


나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기일(忌日) 이후 영화처럼 깔끔하게 정비된 공동묘지에 가족 모두가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설렜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일자리를 구하든지. 아니 하다못해 복권이라도 긁어대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꿈쩍하지도 않는 몸을 탓하며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붙이며 눈을 다시 감았다. 내 머릿속을 떠도는 슬프지도 적막하지도 않을 감흥(感興) 있는 묘지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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