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
이틀 만에 현관을 열고 나섰다. 퇴직 후 어쩌다 한두 번 아파트 둘레길 걷기를 하다가 수술 후부터는 어쩌다 한두 번 걷기를 못했다. 그 어쩌다가 어제 그제 이틀 동안이었다.
그동안 아침 7시 30분쯤부터 9시 사이에는 집을 나섰다. 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은 영하 4~5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나를 주저앉혔다. 간신히 숨이라도 쉬라고 열어둔 베란다 창문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도 평소와 달리 요란했다. 밤새 내린 눈이 덮어버린 아파트 광장은 고요하고 서늘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침 모습에 집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영하에서 영상으로 온도계가 올라간 오늘 아침. 기지개를 실컷 켜고 잠에서 깬 나는 구름 뒤에 숨어 나타나지 않는 해를 기다리는 달을 바라보며 집을 나섰다. 아파트 후문에 새로 생긴 커피숍 덕분에 코가 벌렁거렸다. 걷기를 멈추고 모닝커피를 향해 달려가려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다독였다. 아침을 커피로 시작했었지만, 수술 후 자제(自制) 중이어서 다.
넥워머로 평수가 넓어진 코를 감싸며 커피숍 앞 건널목을 건넜다. 초등학교, 유치원을 지나 둘레길로 들어섰다. 습관적으로 시간을 봤다. 7시 42분. 1시간 10분 정도 지나면 이곳 출발점으로 돌아올 거다. 나는 6.4km를 향한 첫발을 뗐다. 달리거나 걷는 무리들이 보였다. 패딩조끼를 입은 강아지 목줄을 쥔 애견인도 있었다. 나는 그들 뒤를 따라 황량하기만 한 길을 걸었다.
아직도 구름 뒤에서 나오지 않은 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 속을 헤집다 보면 양념이 부족해 심심할 것 같은 둘레길 한 바퀴가 끝났다. 약속이 있는 날엔 어떤 옷을 입을까? 책 읽으러 농막에 가는 날엔 간식으로 무엇을 준비할까? 목요일이 다가오도록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으면 글감을, 읽다가 덮어둔 책이 있는 날엔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걸었다.
생각 사이사이로 불쑥 솟아오르는 그리움, 서러움, 두려움, 무서움, 불안감 등은 빠른 걸음으로 애써 눌렀다. 45분쯤 걷다 보니 늦어 미안했는지 붉은 얼굴로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기다림에 지친 하현달이 자취를 감춘 하늘이 점점 환해졌다. 나무 밑에 영역 표시를 하며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던 강아지가 내 뒤로 처졌다.
제시간보다 늦게 나온 햇살이 퍼지면서 등에서 땀이 흘렀다. 두툼한 패딩 바지도 무거워졌다. 넥워머를 머리까지 둘러 쓴 탓인지 안경에 김이 서렸다. 안경알 넘어 세상이 흐릿해졌다. 내 세상이 뿌예져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멈춰야 했다. 벤치에 앉았다. 숨죽이고 있던 호흡이 신음처럼 터져 나왔다. 내 목소리에 목줄을 쥔 주인과 강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강아지가 나를 향해 짖었다. 나는 장수 친구집 '민트' 생각에 안경알을 닦던 장갑을 들어 흔들었다. '짖지 마! 나도 민트, 토리라는 강아지 친구들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한쪽 눈도 찡긋해 줬다.
군 입대를 앞둔 큰아들이 한 달 가까이 엄마를 설득해 집으로 데려온 몰티즈 민트는 친구 가족과 15년을 함께했다. 귀촌 전 서울에 살던 친구집에 들렀던 딸과 나는 꼬리를 흔들며 우리 품으로 파고드는 녀석의 애교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질 못했다. 귀여움으로 포장된 녀석은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온몸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에 녀석의 귀여움도 애교도 서서히 시들어갔다.
작년 11월 말. 오래간만에 장수에서 다시 만난 민트는 고집을 실타래 뭉치처럼 휘감고 있었다. 사람도 나이 들어가면서 아집(我執)이 커진다고 하더니 비슷했다. 나는 발버둥 치는 민트를 껴안고 '우리 곱게 늙어가자'며 온몸을 휘감고 있는 털을 쓰다듬어줬다. 예뻐하고 있는데도 민트는 내 품을 벗어나려 애를 썼다. 이런 나와 민트 곁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던 신사 고양이 하루, 마당을 지키던 마루 모습까지 눈에 선하다.
민트는 사람나이로 치면 여든에 가깝다고 했다. 먹는 것도 잊고 앙상해져 가던 민트는 새해 첫날을 앞두고 친구 부부 곁을 뱅뱅 돌다가 떠났단다. 소식을 들은 나는 친구 부부와 긴 세월을 함께한 하루, 마루까지도 걱정했다. 그나마 사람은 서로 위안하며 울기라도 할 건데 하루와 마루는 어떻게 슬픔을 표현할까? 같이 뛰어다니던 공간의 허전함은 무엇으로 메꿀까? 먹이와 물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릇을 이해는 할까? 이들에게도 상실감을 극복할 상담이 필요하진 않을까?
나를 향해 목청껏 짖어대던 강아지는 주인을 따라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벗었던 안경을 썼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걸어가는 강아지 뒷모습이 민트 같았다. 몸서리치게 이발을 싫어해 소리소리 지르던 민트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도 같다. 잠시 쉰 덕분에 부드러워진 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끙' 소리가 났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멈춰봐야 갈 곳도 없다. 어차피 앞으로 가야 집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늦게 나온 해가 달궈놓은 하늘이 나를 따라왔다. 햇살을 쬔 내 뺨도 붉어지고 있다. 오른손으로 빛을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용히 어슬렁 거릴 하루와 마당에서 허전한 거실을 바라보고 있을 마루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민트가 보고 싶다고 바쁘게 그곳으로 가지는 말자. 좀 기다리면 어때. 우리는 천천히 가는 걸로. 알겠지!.' 딱풀 같은 그리움은 변수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나는 여전히 상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