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그리움을 털어내다.
늘,
고개 숙이고
걷는
내게 네가 물었다.
“찾는 게 뭐야?”
“……”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봤다.
지난여름에 다녀온
아드리아해보다
더 짙은 푸른색이다.
“내가 찾는 건 저기에 있는데…”
난
왜 땅만 보고
걸었을까?
혹시,
널 보면
놓지 않을까 봐.
11월에 벌써 첫눈이 왔다.
강아지처럼 눈 속에 뒹굴고 싶었지만, 밤사이 바람에 날아가고 개미 발톱만큼 쌓였다. 부엌 창으로 보이는 골프장 언덕배기엔 눈이 제법 쌓였다. 뒹굴고 싶어 뛰어가고 싶지만, 부지런해야 할 내 두 발이 거부한다. 창밖 멀리 있는 눈을 바라보다 그리움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난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돌아가신 부모님. 먼저 간 그 남자.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뭘까? 이 느낌. 아쉬움? 보송보송하던 손등은 쭈글쭈글해지고, 빽빽하던 머리카락이 휑해져서일까?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집 안 정리를 했다. 깔끔해져 마음이 편안하다. 공간이 넓어지자 28평이 33평처럼 보인다. 물론 노안 탓이다. 정리된 집을 로봇청소기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걸리적대는 것들이 없어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엉덩이를 흔들면서 구석구석 쑤셔댄다. 이쁜 녀석이다.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니 더 흔들면서 흥얼흥얼 온 집안을 쓸고 다닌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물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없다. 샤*, 구*등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에게 “오! 나 있어요! 가방.”하고 만다. 그리고 나에게 속삭인다. ‘내가 명품인데…’ ㅎㅎ 어쩜 갖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일찍 단념했는지도.
그런 내가 요즘 미치도록 갖고 싶은 게 있다.
머리를 감고 나면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점점 휑한 머릿속. 절망이다. 출근 전 이쪽저쪽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최대한 휑한 부분을 가린다. 그래도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처럼 내 머릿속은 차갑다. 두툼한 빨간 내의라도 입혀주고 싶다. 영양부족 아니, 나이 든 탓인지 머리카락은 힘도 없다. 짠하다. 주인을 잘 못 만난 탓도 있다.
이 마음이었나 보다. 하얀 눈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하던 순간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 것은 늙음을 인정하지 못한 마음. 이제야 한숨 돌려 살펴보니 이미 멀리 떠나버린 젊음이 아쉽고 그리워서.
로봇청소기가 먼지를 비운 후 충전을 시작한다고 외친다. 나도 지금껏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가슴속 모든 것을 비우고 충전해야 할 시간이다. 충전 완료라는 알림음이 울릴 때쯤엔 휑한 머릿속이 채워질까? 쭈글쭈글해진 손등은? 난 늦기 전에 든든한 아침밥을 챙겨 먹으러 식탁으로 갔다. 그리고 늙음이 무언지 모를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한다.
“니들이 비움의 아픔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