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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Nov 21. 2023

겨울이 온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그리움을 털어내다. 

,

고개 숙이고

걷는 

내게 네가 물었다.

찾는 게 뭐야?”

……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봤다.

지난여름에 다녀온

아드리아해보다

더 짙은 푸른색이다.     


내가 찾는 건 저기에 있는데     


난 

왜 땅만 보고 

걸었을까?

혹시,

널 보면

놓지 않을까 봐.


     

11월에 벌써 첫눈이 왔다.

강아지처럼 눈 속에 뒹굴고 싶었지만밤사이 바람에 날아가고 개미 발톱만큼 쌓였다부엌 창으로 보이는 골프장 언덕배기엔 눈이 제법 쌓였다뒹굴고 싶어 뛰어가고 싶지만부지런해야 할 내 두 발이 거부한다창밖 멀리 있는 눈을 바라보다 그리움에 눈물 한 방울이 뚝난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돌아가신 부모님먼저 간 그 남자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뭘까이 느낌아쉬움보송보송하던 손등은 쭈글쭈글해지고빽빽하던 머리카락이 휑해져서일까?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집 안 정리를 했다깔끔해져 마음이 편안하다공간이 넓어지자 28평이 33평처럼 보인다물론 노안 탓이다정리된 집을 로봇청소기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걸리적대는 것들이 없어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엉덩이를 흔들면서 구석구석 쑤셔댄다이쁜 녀석이다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니 더 흔들면서 흥얼흥얼 온 집안을 쓸고 다닌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물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없다*, *등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에게 나 있어요가방.”하고 만다그리고 나에게 속삭인다. ‘내가 명품인데’ ㅎㅎ 어쩜 갖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일찍 단념했는지도

그런 내가 요즘 미치도록 갖고 싶은 게 있다

머리를 감고 나면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점점 휑한 머릿속절망이다출근 전 이쪽저쪽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최대한 휑한 부분을 가린다그래도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처럼 내 머릿속은 차갑다두툼한 빨간 내의라도 입혀주고 싶다영양부족 아니나이 든 탓인지 머리카락은 힘도 없다짠하다주인을 잘 못 만난 탓도 있다

이 마음이었나 보다하얀 눈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하던 순간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 것은 늙음을 인정하지 못한 마음이제야 한숨 돌려 살펴보니 이미 멀리 떠나버린 젊음이 아쉽고 그리워서

로봇청소기가 먼지를 비운 후 충전을 시작한다고 외친다나도 지금껏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가슴속 모든 것을 비우고 충전해야 할 시간이다충전 완료라는 알림음이 울릴 때쯤엔 휑한 머릿속이 채워질까쭈글쭈글해진 손등은난 늦기 전에 든든한 아침밥을 챙겨 먹으러 식탁으로 갔다그리고 늙음이 무언지 모를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한다.


니들이 비움의 아픔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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