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뱃살공주 Dec 13. 2023

27년간 쌓은 밥을 먹다.

뱃살이 점점 늘어나요^^

음식을 해볼까 할 때 부엌을 떠났다.

퇴근길에 우뚝 서있는 이마트 반찬가게를 애용했다.  가끔은  가까이 사는 친정식구들한테 들러붙어 영양식을 해결하곤 했다. 딸내미가 대학시절 한 달 정도 서울 시누이집서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어느 날 딸이 놀랜 목소리로 

"엄마! 고모집은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 먹어. 돼지고기 두루치기도 고모가 만들었어"

딸에게 고기구이는 이모들 집이나 이모들이 데리고 간 식당에서 먹는 거니깐.

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이마트에서 사 와야 하는 거고.

웃픈 이야기다. 


하루 한 끼 골고루는 학교 급식실서 꼬박꼬박 먹었다. 

아마 딸도 그랬을 거다. 난 불량 엄마다. 

이제 딸이 결혼해서 사위도 있다.

사위는 딸아이에게 얼마나 세뇌가 되었는지 

"어머니! 저희가 와도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외식해요. 전 아아 한잔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사위는 우리 집에 오면 냉커피 한잔만 마신다. 못된 장모님이다.


그래도 딸과 사위는 재미나게 살고 있다.

엄마보다 이모들을 보고 배운 딸은 부엌에 제법 서있곤 한다. 사랑꾼인 사위는 딸을 밀어내고 직접 칼을 휘두른다. 고맙고 든든하고 예쁜 사위다. 둘은 캠핑을 즐긴다. 

색다른 음식을 하면 나에게 동영상을 보내온다. 그리고 이내

'앗! 혼자 있는 엄마한테 미안^^' 문자가 온다. 딸과 난 그런 모녀다.

무심한 척 서로를 챙기는 딸 부부랑 난 솔메이트다.

주말에 엄마한테 온다는 딸 연락을 받고 금요일 퇴근 후 사고를 쳤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어묵반찬과 멸치볶음'에 도전했다. 부엌상황이 전쟁터처럼 변했다. 그래도 "엄마표 맛있어!"라는 딸 부부 말에  "또 해줄게" ㅎㅎ 둘에게 대답은 듣지 못했다.


12월에 날마다 외식이다.

12월이 되면서 거리 두기란 단어가 어울린듯한 어정쩡한 관계인 선생님들이 밥을 먹자 한다. 난 놀랬다. 그들과 통상적인 업무로 얽혔을 뿐인데… 망설이는 나에게 탁상용 달력을 들이민다. 손 없는 날로 택하란다. 그렇게 시작한 '밥 먹어요'가 달력을 꽉 채워버렸다. 얽히고설킨 큰 인연이 없는 동료들인데. 그래서 난 12월에 날마다 외식이다. 어젠 부서회식 까지 했다. 떠나는 자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려졌다. ㅎㅎ

<줄돔-전복-꽃게로 이어져 상다리가 부러짐^^>

27년간 쌓은 밥이 63 빌딩처럼 높다.

날마다 뱃살이 늘어나고 있다. 두드리면 북소리가 들리는 뱃살이지만 잘 지키려 한다. 영양분이 부족할 때 조금씩 조금씩 꺼내 사용하려고. 난 12월 외식으로 내년 봄까지 필요한 영양분을 내 신체 다른 부위에도 비축 중이다.  그래서 탁상달력에 적힌 밥 약속이 든든하고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앵두나무 우물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