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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Dec 22. 2023

흔들리면 흔들린 대로

뱃살은 사랑입니다.^^

대설 한파특보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전 문자가 쏟아진 며칠 전

난 저녁 약속이 있어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김이 서린 창문 탓에 버스 안은 더 답답했다. 난 장갑 낀 손으로 창문을 닦았다. 캄캄한 도로엔 마치 명절 귀성길처럼 자동차들이 줄을 이뤘다. 신호가 바뀌어도 자동차들은 엉금엉금이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흔들거리면서 잘 달렸다. 

오래간만에 버스를 탄 난 변해있는 버스 모습에 놀랐다. 하차하는 쪽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했다. 손잡이는 알록달록 무지개색이었다. 덕분에 만원 버스 안이지만 깔끔하고 넓어 보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택한 내가 기특했다. 그날 저녁 난 기특함에 대한 포상으로 서로 오가는 맥주에 허리를 풀었다. 이런 나를 위함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나는 올봄부터 편한 통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먹이고 입혀가며 키운 '살'들이 숨바꼭질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난 1년 내내 통바지를 사랑했다.

치마를 즐기지 않던 내가 폭넓은 바지를 입었더니 마치 긴치마를 입은듯했다.

내가 걷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뛰뛰빵빵’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한다. 빠른 걸음을 놀리는 말이다. 통바지를 입고부터는 씩씩하게 걷던 걸음이 조금은 얌전해졌다. 그렇다고 육십 평생 함께했던 걸음걸이가 멀리 떠난 건 아니고.


젊은 선생님들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2일 옷차림을 은밀하게 알려왔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빨강과 초록이라 한다. 젊은 선생님들과 같이한다는 즐거움에 난 초록 스웨터를 찾아두었다. 

오늘 아침 작년까지 즐겨 입던 부츠컷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으려는데… 이건 허걱이다. 통바지 속에서 꼭꼭 숨어 있던 나의 소중한 ‘살’들이 튀어나오는데 놀랬다. 4차선에서 쌩쌩 달리다 2차선 도로를 만난 기분이랄까? 1년 동안 난 날 믿고 너무 방심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튀어나온 뱃살들이 제 맘대로 출렁거리다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난 다시 통바지를 입었다.     

미니 크리스마스트리^^

난 오늘부터 먹는 양을 줄이겠어. 

아침밥을 한 숟갈만 먹고 출근했다. 숟갈 크기는 말하지 않겠다. 교무실에 들러 ‘오늘의 옷차림’을 비교하는 중 선생님 한 분이 손에 뭔가를 들고 다가왔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샌드위치예요. 우리 같이 먹어요”

이런 된장! 난 부츠컷 청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샌드위치를 든 손이 흔들거리는데 ‘띵동’ 문자가 왔다.

“언니 오늘 동지죽 준비했습니다. 퇴근하면 들리세요.”

이웃이 된 어린 친구다. 난감하네! 

버스가 달리면서 흔들렸던 때 보다 난 더 흔들리고 있다. 난 깊은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 어느새 입에 샌드위치를 넣고 있다.

 ‘그래 어쩔 거야.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몸이 따라야지. 그러지 않으면 넘어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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