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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Jan 05. 2024

기지개를 켤 시간

도망친 근육을 찾아서.

지난주 목요일 방학을 했으니 이제 일주일이다.

난 방학이 시작되면 일주일 동안 먹고 자고 뒹굴만 한다. 한 학기 동안 애쓴 날 위로한다는 핑계로 숨만 쉬면서 최대한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이다.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구는 나를 은근히 부러워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나에게 그 시간은 한 학기 동안 참고 참았던 설움을 우울을 힘듦을 해소하는 느긋한 시간이다.

이번 겨울방학은 그전 방학과는 좀 다른 방학이다. 퇴직을 앞둔 마지막 방학이니깐. 그래도 오랜 습관, 규칙은 지키는 거니깐 하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일주일 동안 눕방 먹방을 즐겼다.

50대 이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 감소율이 어마 무시하다는 뉴스를 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설마 일주일인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오늘 아침 일주일 만에 털고 일어서는데 휘청거리는 허벅지에 단단한 내 마음의 근육이 무너졌다. ‘이런 된장! 허벅지가 장딴지가 되다니…’

지난 일주일 동안 뱀 기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근육 빠지는 소리였나 보다. 일주일 동안 내 몸을 실험 삼아 건강 뉴스를 입증한 꼴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인 이곳은 같은 브랜드 아파트가 10차까지 있다.

모든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길을 걷고자 길을 나섰다. 일주일 만에 신은 신발은 기분이 좋은지 내 발을 성큼성큼 이끌었다. 소갈머리 없이 날뛰는 망아지처럼. 초등학교 앞을 지나 들어선 둘레길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저들도 나처럼 빠진 근육을 채우려고 나왔을 거다. 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누르며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내 몸을 감싼다. 바람 한 점 없이 따뜻하다. 도망간 근육을 찾기에 맞춤형 날씨다. 게으름을 떠나보내기도 좋은 시간이고. 발가락 끝에 힘을 잔뜩 주고 걸으면서 난 지키지도 못할 3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현관을 나서자.

둘째  하루 한 끼는 학교 급식처럼 골고루 차려 먹자.

셋째  눕방은 오후 6시 이후에 하자.

둘레길 중간에 설치된 표지판^^

방학 후 일주일 동안

나는 빵, 떡, 냉동만두, 냉동 떡볶이, 호빵, 커피, 맥주를 먹고 마셨다. 게을러서지만 변명하자면 어른이지만 초딩스런 입맛인 덕분이다. 다행히 그제 저녁엔 이웃인 젊은 친구가 ‘해물 미역 수제비’를 들고 와 오래간만에 뜨끈뜨끈한 국물을 먹었다.

ㅎㅎ2차는 딸, 젊은 친구, 나만 아는 비밀^^

3가지 결심을 굳히기 작전

으로 1인용 의자에 편안히 누워있음 바로 보이는 곳에 걷기에 적합한 옷을 두었다. 마음과 달리 게으른 눈으로 옷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글들 ㅎㅎㅎ

난 겨울잠을 자는 곰이다.

잔뜩 웅크리고 들어온 동굴은

너무 깊고 어둡지만 따뜻하다.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불빛을 아쉬워하며

엄마 품처럼 포근한 동굴에서

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 겨울이 끝나고 나면

난 얼마나 더 큰 곰이 되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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