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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Jan 07. 2024

아버지 기일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은 아버지가 저 푸른 하늘로 가신 지 9년째다. 

며칠 동안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아버지가 오시나 보다. 

막냇동생과 난 엄마, 오빠 그리고 아버지 가족들이 계신 가족 봉안당을 갔다. 

당신 몸 관리를 철저히 하시던 아버진 고관절 수술 후 폐렴에 무너지셨다.

중환자실에서 흉관삽입술까지 했지만… 

84세 시던 아버진 고관절 수술 후 한 달 만에 떠나셨다.

봉안당 문을 열어둔 채 동생과 난 아버지 마지막 날을 회상했다.  

그날 아침 평소 꼼꼼하게 양치하는 아버질 위해 여동생 둘이서 아버지가 만족하실 때까지 양치질을 해 드렸다. 양치 후 호흡이 힘든 아버진 숨을 몰아쉬며 침대 주변에 서있는 우리 6남매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로 말씀하셨다.

"오늘 아침엔 이를 닦아 개운하다. 난 너희들 덕분에 많이 행복했다. 고맙다."

면회가 끝난 후 나와 딸은 대구로 향했다. 딸이 살았던 원룸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 이삿짐을 조금 남겨두었는데 드디어 방을 비워주라는 연락을 받아서다.

아버지가 계신 순천성가롤로 병원 앞을 지나면서 딸과 난 인사를 했다. 

"아버지 갔다 올게. 이따 봐^^"

"할아버지 심심해도 조금만 기다리세요"

대구 톨게이트쯤 일 때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놀라 우는 딸을 달래면서 난 원룸에 들려 짐을 챙겼다. 순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아가셨으니 천천히 오라는 막내 제부 전화를 받았다.

아침 면회 때 환한 표정으로 그동안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하셨던 게 아버지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해 겨울 난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아버지를 뵐 때마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못된 둘째 사위 떠난 날 보다 더 오래오래 견뎌주세요. 제발 아버지'  

아버진 나의 바람 덕분인지 남편 기일이 지나고 돌아가셨다.

그날 날씨는 참 따뜻했다.


봉안당에 다녀온 후 '5년 후 나에게' 노트를 뒤적거려 봤다. 

오늘 질문은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2024년 1월 7일 답을 쓰자면 '좋은 편이다' 

작년 11월 알게 된 '브런치스토리'가 나에게 좋은 운을 더해주고 있다.  

뚜렷한 주제는 없지만 난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위로받는 이곳이 난 참 좋다.


2016년 1월 7일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되어 아니 가장이 되어 돌아온 1996년 병원 취업을 쉽게 했다. 든든한 밥 세끼를 먹고살라고 도와준 거다. 이내 학교 보건교사로.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열심히 즐겁게 살라는 '신의 계시' ㅎㅎ 난 운이 억수로 좋은 편이다

2017년 1월 7일

여러 가지로 좋은 편이다. 딸내미 대학 졸업 후 조금씩 조금씩 저금을 할 수 있었고, 이 집으로 이사까지 했으니. 27층 이 집이 정말 좋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ㅎㅎ 이 정도 운이라면 올 한 해도 난 대~~박^^

2018년 1월 7일 

좋은 편이다. 느리긴 해도 하고픈 일을 갖고 싶은 것을 다했다. 난 운이 아주 좋은 편이다. 나의 좋은 기운을 딸내미에게도 주고 싶다.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고 있다. 간절함에 맞춰 노력하면서.

2019년 1월 7일

좋은 편이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가기도 하고. 가장 운 좋음을 보여주는 건 힘들지만 보건교사가 좋다는 거다. 힘들게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2020년 1월 7일

좋다. 간호사면허증, 교사자격증이 날 이 자리에 있게 해 줬다.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걷다 보니 바람을 막아주는 천막을 만난 기분이다. 운이 좋아 편한 곳으로 좋은 신발을 신고 걷고 있다. 나의 좋은 운이 딸내미에게로 향하길.^^


강물이 흐르듯 사랑은 아래로만 향하나 보다. 

부모님께 실컷 받았을 좋은 운을 이제 나에게서 딸에게로 향하길 기원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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