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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Jan 11. 2024

꿈을 잡다.

dreamcatcher

암막 커튼 덕분에 빛이 차단된 침실은 겨울잠을 자기에 완벽한 장소다. 1박 2일 경주 여행을 마치고 어제 오후 늦게 돌아온 난 여행을 다녀와 힘들다며 이제 침대에서 나오라는 햇살의 손짓을 외면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일어나라는 신호를 못 들은 척 푹신한 솜이불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직 이불 속이니? 이제 일어나서 커피 한잔하고 통화 좀 하자’

두 번 정도 전화 진동음이 들렸지만 귀찮아 받지 않았더니 문자가 왔다. 이틀 동안 함께 했던 친구다. 동굴 같은 이불 속에 누워 먼 거리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는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전화 통화를 마쳤다. 조금씩 이불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빛에 난 팔다리를 쭉 펴며 축구 선수처럼 두 발로 힘껏 이불을 걷어차고 거실로 나왔다.


떠나기 전엔 설레고 돌아오면 그리운 것이 여행이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정리해야 할 짐들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다. 난 발로 가방을 한쪽으로 밀어 두고 부엌으로 갔다. 수동분쇄기로 커피원두를 갈아 모카포트에 넣어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금세 퍼지는 커피 냄새에 취한 채 거실로 길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가만히 바라봤다. 거실 바닥을 비추는 햇살에 떠다니는 뽀얀 먼지가 윤슬 같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어제와 같은 환함과 따뜻함을 선사하는 햇빛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짐 보따리가 눈에 거슬린다.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정리 정돈을 시작했다. 환기를 위해 거실 창을 열었다. 겨울인데 차갑다기보다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집 안으로 훅 들어왔다. 누구 집에서 빵을 굽는지 맛있는 모카빵 냄새가 났다. 빵을 좋아하는 난 코를 끙끙거리며 잠시 행복에 빠져들었다. 바람과 창에 매달린 ‘드림캐처’가 내 머리카락을 간지럽힌다. 난 고개 들어 거실 창에 매달린 종과 함께 빙글빙글 도는 드림캐처를 쳐다보며 잊히지 않는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담임선생님 시간인 조회 시간에 방송교육을 한다. 그 해 난 1학년 담임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커피와 빵을 먹고 출근했다. 담임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날뛰는 우리 반 아이들을 제압하고 아침 방송교육을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하지만 쏟아지는 속보에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난 아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모두 다 금방 구조될 거야. 다들 쉿!” 

다른 학급도 소란스러웠다. 아니 학교 전체가 술렁거렸다.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뉴스 진행자 목소리보다 점점 더 커졌다. 

“저게 뭐야. 배가 기운다. 기울어. 어~~ 어~~”

그렇게 시작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했다. 침몰한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1학년이던 우리 반 아이들은 조회, 종례 시간에 나에게 같은 질문만 했다.

“선생님!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예요? 우리는 누가 구조해 줘요? 맨날 움직이지 말고 떠들지 말라고만 하고! 도대체 어쩌라고요?”

대답할 말을 찾아 헤매면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은 학년이던 아이들을 그냥 손 놓고 보내야만 했던 것을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물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가는 자식들을 화면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부모님 심정을 감히 어떤 단어로 말해줄 것인가?

전 국민이 울기만 하던 그때 난 우리 반 아이들을 어떻게 다독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난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나와 그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하얀색 드림캐처를 사서 거실 창가에 걸었다. 가지고 있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 준다는 의미가 있어 창가나 문가에 걸어두기도 하는 장식품이다. 둥근 드림캐처 양쪽에 아이들 머리카락을 정리하듯이 노란 병아리 머리핀과 종을 꽂았다. 거실 창을 열면 바람에 흔들흔들 춤을 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는 드림캐처를 보면 나는 먼저 떠나간 사람들과 아이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울컥한 목소리로 푸른 하늘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 어떻게 지내니? 거기 어른들 우리 아이들 잘 보살피고 있죠?”

그 후로도 종종 바람에 흔들리는 드림캐처를 보면 혼잣말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오늘도 정리 정돈을 위해 열어둔 거실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드림캐처가 최고의 춤꾼처럼 움직인다. 같이 걸어둔 종과 함께 미치도록 소리 내며 춤을 춘다.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곳은 안녕하냐고 중얼거렸다. 그곳으로 먼저 떠난 사람들과 아이들이 종소리에 맞춰 대답했다.

“그래. 먼저 온 우리들이 아이들 잘 보살피고 있다. 이제 대학 졸업하고 다들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지낸다. 너도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오래오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여기서 만나자” 

어른들 뒤에 숨어 분위기를 살피던 아이들도 불그스름한 얼굴을 내밀면서 내게 말한다.

“여행 다녀왔나 봐요? 가방이 작은 걸 보니 가까운 곳 갔다 왔군요. 퇴직 후에도 하고 싶었던 것 더 신나고 재미있게 하세요.”

난 뿌옇게 흐려지는 눈을 비비면서 대답한다. 

“응원해 줘서 고마워. 난 1박 2일 경주 갔다 왔는데 이젠 좀 힘들다. 너흰 수학여행 마치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했구나. 그곳에서라도 하고 싶던 꿈들을 꽉 잡고 하고 있다니 다행이야. 나도 내 꿈 꽉 잘 잡고 지낼게. 그곳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

차마 목이 메어 아이들에게 하지 못한 말은 못난 어른이라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https://youtu.be/PXoU-e0xERI?si=fzOE31WPkUyKY1pS       

<임형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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