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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Jan 25. 2024

see作

하고 싶다.

딸아이가 처음 집을 떠났을 땐

서로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자유와 평안함을 느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 그동안 둘이 살면서 지지고 볶은 것들이 꼭 행복하기만 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딸이 서른이 되기 전 혼자 지내고 있는 엄마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주겠다고 3년 전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면서 떨어져 지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딸과 싸우기도 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어른이 된 딸이 좋았다. 내가 키운 거에 비해 잘 자라준 딸이 고마웠다.


작년 봄쯤 딸 아인 

내 곁에서 2년만 지내려 했는데 조금 늦어졌다는 말과 함께 이사를 나갔다. 꿈을 찾아나가니 걱정하지 말라는 딸아이를 데려다줬다. 혼자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떠난 딸은  언젠가 결혼을 할 테니 혼자 지내야 하는데 퇴직 후 어떻게 해야 할지. 큰소리쳤지만 방학이 아닌 긴 휴식시간을 어떻게 보낼 건지. 오가는 화물트럭을 바라보다 내 마음속에 불빛이 번쩍거렸다. 평소 커피와 빵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하던 난 이동 커피차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머리 위로 꽃 잎을 날렸다. 


난 평생교육원 바리스타 수업에 등록했다. 

퇴근 후 피곤을 날려주는 커피 향 속에서 6개월을 보내고 바리스타 시험까지 마쳤다. 원두를 갈아 커피 내리는 시간 동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직접 모양을 낸 캐러멜 마끼야토를 실컷 마셨다. 피곤을 날리는 데엔 달달함이 최고니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감에 몸과 마음이 풍성해졌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만들어 나누겠다는 생각에 이동 커피차 이름까지 지었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커피잔도 모았다. 그 커피잔이 50개가 넘었다. 이제 6년 후면 내 삶에 커다란 기쁨과 희망이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 푸른빛을 띠며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는 고등어 같았던 내가 희끗희끗 해진 머리카락과 둔해진 발걸음을 가진 노년층이 돼가고 있음에 살짝 서글프기도 하다. 퇴직 후 새로 시작할 제2의 직업을 생각하면 다시 흥이 난다. 새해가 되면 다들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다짐한다. 나도 58세가 되는 지금부터 6년 후 시작할 see作을 위해 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프렌치토스트 만들기에 도전해야겠다.  <2018년 1월 5일 금요일>


브런치스토리 작가명을 본 친구가 물었다. 왜 see作이 아니고 뱃살공주냐고.     

'친구야! 내 꿈이 아직 진행형이라 뱃살공주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꿈은 꿈일 뿐. 통장 잔고 숫자를 헤아려본 난 식탁에 앉아 자동분쇄기로 시끄럽게 간 원두냄새에 취해있다. 먹는장사를 한다는 게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 힘들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개조한 트럭에 커피와 토스트를 싣고 전국을 누비는 상상에 더 빠져든다면 see作할 것도 같다. 이불 밖은 춥다고 따뜻한 집안에서 눕방 먹방 중인 내가 감히 이런 배부른 상상을 하다니 떼엑ㅎㅎ! 커피나 한잔하자. 

상상으로 끝날 꿈이라기엔  밀려오는 파도처럼 작은 트럭과 커피 토스트 그리고 달달하고 맛있는 냄새를 향해 뛰어오는 사람들이 내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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