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by Book lilla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장편소설, 창비


내가 요즘 책을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다. 청소년들이 읽어볼만한 성장소설인가?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인가? 물론 이 기준외에도 인지도나 제목, 표지에 끌려서 고르기도 한다. 읽다가 아니다 싶은 책은 가감히 접고, 브런치에 올릴만한 책은 이해가 완전히 되어서 글을 쓸 준비가 될 때까지 읽는다.


사실 이 책은 잘 알려진? 성장소설이라 선택을 했다. 사실 나는 마법, 환타지 이런 류의 책들은 잘 이해도 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나와 반대라 환타지 쟝르를 너무 좋아한다. 연애할 때 아내가 '반지의 제왕'을 보자고 해서 갔다가 나는 도저히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ㅎㅎ. 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현실주의자(이 용어가 적절한 지모르겠는데)이다.

이 글을 쓰기까지 다른 책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좋아할 것 같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일단 빵 용어부터가 낯설다. 내용 전개도 과거, 현재, 현실과 마법을 왔다갔다해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었다. 한번을 다 읽고나니 작가가 전체적으로 뭘 이야기 하려는 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하니 브런치 글 3개가 검색이 되었다. (난 나의 이해력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처음 읽고 글 쓰려는 내용이 딱 잡히지 않으면 브런치 글 올리기 전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검색해 보면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 지 꼭 확인을 해본다.)


모두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순간, 이렇게나 좋은 많은 서평이 있는데 굳이 나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비교는 되지 않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책은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읽혀지니까 내가 이해한 관점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독서토론하면서 늘 느낀 것인데, 책은 여러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같은 내용이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토론에서 내 의견을 말하듯이 글을 쓰려고 한다. 몇 년 동안 하던 독서토론을 쉬게 되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재혼 가정에서 새어머니와 갈등을 일으키던 주인공은 의붓동생의 성추행범으로 지목이 되고 이를 알게된 새엄마는 분노하고 주인공은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도망치던 중 늘 가던 빵집으로 숨어 들어가게 되고, 숨어 지내면서 마법의 빵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지내다가 고객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신고하게 되고, 위저드 베이커리는 문을 닫고 주인공은집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의 의붓동생 성추행 장면을 보게 된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고, 내가 읽으면서 와 닿은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난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32,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36, '나는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주인공은 '난 거기 존재했을 뿐' 이라고 절규한다. 부모님이 낳아서 '거기에 존재했을 뿐'인데, 왜 고통받아야 하는 지,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 '난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주인공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어느 곳에서도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책임감

마법사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걱정을 해결해주는 마법의 빵을 주면서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책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행위에 대한 책임, 선택에 대한 책임.

56,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분만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176, 그는 아마도 정말은 그 쌍둥이를 살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틀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였다. 또는 앞으로도 틀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였다. 또는 앞으로도 틀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결심, 닫아 걸음 그것이 바로 선택을 함부로 남발하는 손님들을 차갑게 내치는 이유.


청소년 시기, 에너지는 폭발하고 생각은 혼란스러운 시기, 엄청난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부모의 문제로 전가된다. 부모가 사과하고 뒷수습도 하고.

어느 방송인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이 유리창을 깼는데, 그 분의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 일체 얘기하지 않고 영수증 한 장만 내밀었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행동의 책임을 지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 생각해 행동하되 책임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오로지 책임을 져야 한다면, 더 성숙하고 독립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정면돌파?

68, "그래도 안 돼.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부딪칠 것. 운 좋으면 해결될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일시적으로 숨겨준 건 그래도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지. 딴 뜻은 없어. 지금 숨으면 앞으로 다른 일이 생겨도 몸을 피하려고만 할 걸."


집 나온 주인공에게 마법사는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히라고 한다. 빵집에 숨어지내지만 이는 영원할 수 없고,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결국 벌어진 일에 맞서 대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한다. 결국은 맞딱뜨려 하나하나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이 두렵고 어려워 회피한다.


나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두려워 그냥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잠시 비껴있을 뿐 그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는 계속 내 속에 살아 남아 있어 괴로웠다. 지금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직시하고 해결하려 한다. 물론 당장은 힘들고 마음을 내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이지만,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온 길로 다시 걸어가 차분히 다시 시작한다.


마법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어

56,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들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수 있다는 사실 명심하십시오'


위저드 베이커리 이용자들은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위저드 베이커리를 이용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벗어날 수는 없다. 우주의 질서를 벗어나는 순간,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남자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했던 고객은 그 남자에게 스토커를 당하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지금 여기, 선택에 최선을

217,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이 문제 였을 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218, '그러나 그때는 나를 붙드는 현실에서 격렬히 도망치다가 그곳에 다다랐을 뿐이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그저 선택의 이야기라 한다.

또한 작가는 '상처가 나면 난 대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단지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실은 더 많을 터다.'라고 맺는다.

선택하든 되어지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버티며 살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


176,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거야.'


현재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 아닐까? 주인공은 난 그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마법으로 도피하려 하지만 결국 지금 여기에 선택되었고, 그 선택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청소년 성장소설로 소개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고1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현실 아닌가? 하지만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더 많은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난 그저 거기에 존재했을 뿐인데...'를 되뇌이고 있다. 작가는 어렵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정면돌파하고 버티라고 한다. 내가 선택을 했던 선택되어졌든 간에 결국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니까...선택을 할 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냥 거기 존재했을 뿐'인 이 아이들만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까? 사회는? 교사로써 나는? 우리 또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무거워진다. 아이들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나의 성장 소설이 될 것 같다.

지금 나는 여기에서 내가 선택한 이 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그 선택이 온전한 나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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