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

<유원>을 읽고

by Book lilla

유원, 백온유 장편소설, 창비


큰 아들이 고1 때 추천도서 목록에 있길래 관심이 가서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아파트 화재로 언니와 어떤 아저씨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의 이야기이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 같지만, 예전에 뉴스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아파트에서 자살하는 사람에게 부딪혀서 죽었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현실에서도 정말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더 몰입이 되었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응원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을거야'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읽은 것 같다.


유원이 사는 아파트에서 한 할아버지가 던진 담배꽁초가 아파트 베란다로 떨어져 화재가 나고, 고등학생이던 유원의 언니 예정은 유원을 이불에 돌돌 말아 아파트 아래로 던지고 자기는 빠져나오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 이불에 쌓여 던져진 유원은 아래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받게 되고 이 사고로 아저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살아남은 유원은 세상의 모든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소설이긴 하지만 유원의 입장에 심하게 몰입하였다. 처음 읽을 때도 '어쩌나 어쩌나'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유원이 참으로 힘든 상황에서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에 울컥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더욱더 공감이 되었고, 더 여러 번 울컥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는 정리하는 시간도 제일 오래 걸렸고, 정리하기도 어려웠다. 삶이 어렵듯이. 유원의 삶으로 쑤-욱 들어가 풀어놓은 유원의 삶을 내가 어떤 관점으로 풀어놓아야 할지가 딱히 잡히지 않았다. 보통 의미 있게 읽은 책들은 두 번 정도 읽고 나면 글을 쓰는 방향이 대충 잡혀 초고를 쓰고, 초고를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다 보면 글이 정리가 되는데, 학기말 업무처리에 여러 가지 생각할 게 많기도 많았지만

2주 정도 머릿속으로 책 내용만 뱅뱅 돌았다. 사춘기 둘째와 주말에 서너시간 탁구 칠 때도, 아내와 산책할 때도. 그래도 난 언젠가 글이 쓰여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예전에 학위논문 쓸 때 깨달았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어떤 문제에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면 결국 씌여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포기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날이 오늘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이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보자 였다. '내가 유원이라면' '내가 아저씨라면'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든 생각은 뭘 대단한 입장 같은 걸 찾아내려하거나 잘쓰려고 하지 말고 내가 읽으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하자 였다. 이 두 생각이 짬뽕되어 최종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살아남은 유원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어 진다."

언니와 아저씨의 희생으로 살아난 유원은 누구보다 바르게 건강하게 잘 자라야 했다. 이 부담감에 스스로를 옥죄이면 힘겹게 삶을 살아간다. 언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인생이 힘겹다. 언니의 몫도 대신해야 할 것 같고, 언니와 아저씨의 희생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바르게 잘 살아야 했다. '언니의 몫까지 살아줘'라는 말은 어쩌면 유원에게 가장 잔인한 말일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은 온통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닌 언니와 아저씨, 사회의 시선의 얽매인 삶이었고, 언니를 아저씨를 사회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유원에게 그날의 살아남음은 너무 힘겹다.

십이 년 전 기사에는 '희망'이나 '기적'이나 '빛'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 전체에 희박한 것들을 굳이 내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자식을 살려준 아저씨에게 모든 걸 주고 , 간신히 살아남은 둘째 딸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살아간다. 자신들의 생각은 없다. 오로지 자식을 살려준 아저씨에게 온 정성을 다해 은혜를 갚으려고 애쓴다. 자식을 앞 새운 부모, 이 보다 더 힘겨운 삶이 있을까? 하지만 유원의 부모는 그 힘겨움보다 살아남은 둘째 딸과 둘째 딸을 살린 아저씨를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처신을 잘하라고 하지만 나도 아마 유원의 아버지 이상으로 처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유원의 부모님이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첫 째를 잃어버린 슬픔과 그 슬픔으로 인해 살아가는 둘째를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지만 소설 속의 유원의 부모님은 정말 꿋꿋이 삶을 버텨낸다. 삶을 살아간다 보다 버텨낸다는 말이 적당한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순순히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슬퍼졌다. 엄마는 첫 아이를 잃었는데 첫 아이를 잃은 슬픔에 첫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조차 까마득히 잊어 버린 것 같다.
엄마가 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언니 얘기를 자주 불현듯 꺼내는 것에 비해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번도 목적 없이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그보다는 어색하다 싶을 만큼 의식적으로 언니 이야기를 피했다.


목숨을 살려준 아저씨

유원을 살려준 대가를 제대로 받으려고 한다. 사업을 핑계로 돈을 빌리기도 하고 집에 가서 자기도 한다.여러 사업에 실패한 아저씨는 다시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유원에게 같이 방송을 출연해 줄 것을 요구한다.책을 읽을 때 나 역시 가장 미워하면서 읽은 것 같다. 유원은 책의 곳곳에서 아저씨에 대한 증오를 표출한다.자신을 살려준 대가로 지속적으로 부모님께 돈을 빌리고, 살려준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아저씨에게 고마움도 잊어버리고 미워하게 된다. '나는 나를 구해준 아저씨를 증오해.' 나는 언제까지 아저씨에게 쩔쩔매며 감사해야 하지?' '죽이고 싶어. 정말 죽이고 싶어.'라고.

나라면 유원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도 아저씨를 존경한다. 그리고 나라면 유원의 부모님에게 그렇게 요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원을 구하는 용기는 배우고 싶지만, 자신의 희생을 당당히 요구하는 용기는 배우고 싶지 않다. 그 희생이 값진 것은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생명의 존엄함을 고귀함을 실천할 때 값진 것이지,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그 고귀한 희생은 나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언니의 친구, 신아 언니

유원을 통해 친구 예정을 보려고 한다. 친구로서 신의를 지키려고 하지만 유원에게는 부담으로만 다가온다.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친구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나라면 그렇게 자주 친구의 가족을 대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죽은 친구를 생각하는 것과 무심함의 가운데를 지키는 것도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한 가지 원칙은 자신의 욕망?대로 하지 않는 것,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이다. 나의 욕망이 작용하면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욕망?을 나타내고자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아저씨의 딸과 아들, 수현과 정현

삶에 굴종적인 어른들의 삶에 아이들은 가감하게 일침을 가한다. 수현은 사회봉사라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고자 한다. 정현은 묵묵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 나라면 이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의 욕망과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수현과 정현이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사는 것 같다.

아빠가......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 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 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이제 알아. 아빠는 해로운 사람이야. 아빠는 이 세상에 해로워. 너한테도, 나한테도. 아빠는 변하지 않을 거야. 포기해야 돼. 나는 아빠랑 다르게 살 거야. 너도 내 노력을 우습게 보지 마

수현이 자신의 아빠를 원망하지만 유원에게 당부하는? 말

너랑 있으면 그래도 아빠를 손톱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어져. 진심이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나는 언제까지 아저씨에게 쩔쩔매며 감사해야 하지?'라며 유원은 자신의 삶에 버거워한다. 그러다 삶을 당당하게 응시하며 살아가는 수현과 정현을 통해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죽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추억 해주기.


증오의 감정을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두던 어느 날, 방송 출연을 부탁하던 아저씨에게 유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이 대목에서 나도 아저씨에 대한 마음이 풀어졌다. 유원의 그날의 있는 그대로의 고마움 표현과 그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부담감의 표출이 아저씨에게도 유원에게도 삶의 무게를 벗어던진 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나 자랑스러우라고 더 언니를 띄우는 것 같기도 해. 근데 왜 나는 그런 말 듣는 게 싫지? 어쩌라는 거야, 나 보고!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다 예뻐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 의외로 이타적인 구석이 있어서 포장을 잘 해 줘. 아, 너희 언니가 미화되었다는 건 아니고."
언니를 아는 사람 대부분이 언니에 대한 무서운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다. 언니가 누군가를 살리고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언니의 죽음은 그저 그런 죽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말이다.

살아남은 우리는 죽은 자에게 지나치게 후하고 지나치게 자부심을 갖는다. 결국 그 자부심은 살아남은 자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결국 죽은 자를 통해 나를 세우려고 한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 보아줄 것, 유원의 언니 예정은 사랑하는 동생 원이가 살았다는 것 이외 다른 것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의 용기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하는 동생을 위한 살리기 위한 용기였다.

우리가 죽은 자에게 후하게 대하는 것은 그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살아있을 때 한 번 더 눈맞추고 함께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죽어서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추억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를 생각해주고 위하는 길이리라.


높은 곳에 서려면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언니의 용기를 닮고 싶었다. 이 모든것들을 누리게 해준 언니를.
나는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언니의 용기도 결국 처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 되었다. 불이난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과 동생이 둘 다 살 수 없다는 것, 동생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나 어쩌면 언니 자신도 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한 건 아마 희생이었으리라. 용기에는 희생도 따르리니.

원이는 언니의 희생으로 살아난 그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는,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 아저씨가 감당한 그 무게에, 자신을 살려낸 언니의 용기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준 사람들의 용기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또한 용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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