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뉴턴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읽고
큰 아들이 학교에 갔다 오더니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라는 책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하게 되었으니 책을 사달라고 했다. 난 제목만을 듣고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는 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인데 제목이 낯설기도 했고, 독서토론이라고 하면 ‘약간의 인지도가 있거나 세계명작 정도 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책 제목만을 보고서는 환경관련 책인가 했다.
안그래도 어떻게 하면 아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학교에서는 왜 좀 더 독서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바로 동네 서점에 책을 구입하러 갔는데, 전통적으로? 이 학교의 독서토론 교재여서 그런지 출판년도가 조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쉽게 구입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내가 집에서 똑같은 책을 발견한 것이다. 조카도 중학교때 독서토론 책으로 활용했던 책이라 보유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고 나서 우리 집으로 보냈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참에 아내와 나와 같이 읽고 독서토론을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조금 끔찍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웃 집 말을 구하는 내용인데, 맨 몸으로 가시덤불에 긁혀가면서 이웃 집 말을 구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문제의? 돼지를 선물로 받게 된다. 이후 돼지가 커가는 과정, 이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들로 전개가 되지만, 주로 어려운 가정 환경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어머니, 아버지,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막일을 하는데 주 업무는 백정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먹고 살기 힘든 주인공 가족은 선물로 키우게 된 돼지를 살육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아버지는 병에 걸리게 되고 제목대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날’이 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묵묵히 삶을 견뎌낸 아버지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거친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청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청소년의 성장기라는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이 부모에게 반항심으로 시작된 성장기라면 이 책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삶을 존경하면서 성숙한 어른으로 책임있는 가장으로 성장하는 성장기이다. 아버지가 삶의 모델이고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
“아빠 손에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돼지를 잡은 게 분명했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퀴퀴한 냄새였다. 아빠 몸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늘 그 냄새가 난다.....하지만 돼지를 죽여야 먹고사는 사람이 언제나 일요일 아침처럼 좋은 냄새를 풍길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빠의 온몸에서는 열심히 일한 냄새만 가득할 뿐이다.” 아버지 삶에 대한 존경이 한없이 묻어나는 이야기이다.
“연장들 밑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담배 상자가 보였다. 상자를 열자 몽당 연필 한 자루와 낡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종이를 펼쳐드니 아빠가 이름쓰기 연습을 한 흔적이 보였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버지가 노력한 흔적까지...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치열한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고. 나도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아들에게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5학년 때로 기억난다. 농사 짓는 걸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던 아버지는 가족과 멀리 떨어진 구미에서 아는 친척분의 공장에서 일하고 계셨다. 여름방학이었던가? 작은 누나, 작은 형이랑 나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공장을 방문했었다. 방문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우리 삼남매는 멀리서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약간의 철이 들었던 게 아마 그 때가 아니였나 싶다. 나의 아버지 역시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탄광, 연탄공장, 구미공장 등 객지로 다니면서 온몸으로 맞서시면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라온 우리 형제들 역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낼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아버지 입관식때 아버지께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웠다’고
흔히들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언제 철들래?’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철이 들 때는 부모님, 어른을 통해 삶이 녹록지 않다라는 것을 알 때가 아닌가 싶다. 이 글의 주인공이 그랬고, 내가 그랬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부분의 인물 또한 그랬다.
나에게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또 하나 유사한 점이 있다. 읽기 전에는 많이 망설였으나 읽은 후에는 정말 찐한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도서정보: 돼지가 한 마리도 죽디 않던 날, 저자 로버트 뉴턴 펙, 역자 김옥수,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