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남파랑길을 걸으며
먼길을 걸을 때 신발이 중요해요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었던 남해안 남파랑길. 2022년 5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그 길을 걷기로 했다. 2년 전 남아메리카 여행에서 만난 최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했는데 걷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체력 단련이기도 했다. 삼천포터미널에서 가이드와 함께할 일행들을 만났다. 5개 테마로 나누어진 길 중 한려길 39코스~45코스를 택했다. 해안 경관이 아름다운 길을, 하루 20km 내외로 걸을 예정이었다. 우선 오랜만에 만난 최 선생님 내외와 회포를 풀었다. 남미여행에서 만났던 인정 많고 따뜻한 모습은 여전했다. 가져온 기정떡은 장시간 오느라 지친 심신을 녹여주었다. 갈 길은 멀지만 미지의 남파랑길에 대한 기대감은 파랗게 부푼 풍선 같았다.
첫날은 오후만 걸었다. 둘째 날, 온종일 걷고 저녁 휴식시간이다. 일행들의 자기 소개하는 시간. 먼저 가이드 인사다.
“이 남파랑길 가이드 당당입니다.”
‘아, 그게 닉네임이었구나.’ 신청서를 보낼 때, ‘당당’앞으로 보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을 오타라고 단정 짓고 ‘담당자’ 라고 써서 발송했다. 이런 중요한 서류에 오타라니 신뢰마저 떨어졌었다. 그런데 닉네임이란다.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운영하는 단체이니 청소년의 입장에서 ‘당당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 같다. 나는 이 닉네임이라는 것도 낯설었다. 닉네임을 지으라고 하면 난감하다. 작명 센스가 없는지 떠오르는 것도 없어 고민이 된다. 닉네임 사용도 익숙하지 않다. 이것이 세대차이일까. 일행 10명은 10대에서 60대까지. 각 세대의 대표라도 되는 듯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 중에 내가 60대 중반을 넘어 나이가 가장 많다. 이젠 뭐 좀 해보려면 나이가 제일 많아서, 나이에 대한 중압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최소한 나이 때문이라는 합리화는 하지 말자, 젊은이에게 그냥 어른으로서 힘이 되는 눈치만 살피자.’며 나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능청스럽게 참가한다.
셋째 날, 남파랑길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이정표가 다양하지만 우리는 빨간색 리본이 제일 멋져 보였다. 핸드폰으로 길 찾기를 하며 걸었다. 저 멀리 선두에서 자신 있게, 힘차게 걷는 주영님이 멋지다. 나는 무언가를 말없이 자신 있게 헤쳐 가는 사람의 매력에 잘 빠진다. 마을길, 산길, 해안길, 비탈진 언덕 등을 타고 구비구비 넘나들며 나타나는 다채로운 풍경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어느 길이든 단순하고 쉬우면 재미없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갈 때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해 앞서 보냈는데 고맙게도 최 선생님이 나의 보폭에 맞춰 같이 걸어주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앵강만 휴게소에 모두 모여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새롭게 정신무장하여 다시 걸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쉬고 싶어질 무렵, 호구산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골목어귀를 막 돌아설 때였다.
“자장면 시키신 분~”
“여기요~”
어느 광고에서처럼 외치니 자동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설마 자장면이? 큰 정자나무 밑에 당당님이 서 있었다. 나무 아래 평상에는 신문지 위에 자장면, 짬뽕, 탕수육들이 놓여 있었다. 와우! 걷다 지쳤을 때 만난 자장면이라니, 센스가 압도적인 감동을 주었다. 정자나무 아래 ‘마을 쉼터’라는 푯말은 마치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 같았다.
점심식사 후 걷는 내내 발바닥이 아파왔다. 43코스 선구마을에서 휴식을 가졌다. 오늘은 이 마을에서 취침이란다. 짐을 팬션에 놓고 어딘가를 더 다녀온다고 한다. 발을 보니 왼쪽 발의 둘째 발가락 밑에 물집이 생겼다. 무리하게 걷다가 이동에 차질이 생기면 오히려 민폐가 될 것 같아 혼자 남아 쉬기로 했다. 해변 마을을 느긋하게 한 바퀴 돌았다. 백련초와 담쟁이가 어우러져 돌담을 감싸듯 덮고 있었다. 어느 담은 진주목걸이로 치장을 했다. 진주목걸이는 다육이로 집에서만 기르는 줄 알았는데 야생이라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마 남해의 기온이 따뜻해서 가능한 것이라 짐작했다. 가을이 되면 진주목걸이의 노란 꽃으로 덮인 담이 더 멋질 것 같다. 길바닥에 배를 깔고 네다리를 쭉 뻗고 얼굴은 앞다리에 얹은 개가 나를 보고도 심드렁하다. 해변 ‘카페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과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걷기를 멈추고 바다 일몰과 함께 호젓한 시간을 가지니 남실대는 바다가 더 평화롭게 느껴졌다.
넷째 날, 서상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싱그러운 아침, 창으로 비친 탁 트인 바다가 멋지다. 출발준비를 하며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있는데, 당당님이 신발을 보자고 한다. 이런, 좀 쑥스럽다. 깨끗하지도 않고, 냄새도 날 것이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으니 세상에나, 운동화 바닥이 닳아서 거의 맞창나기 직전이다. 그래서 발에 물집이 생기고 아팠던 모양이다. 먼 길을 걸을 때는 신발이 중요하단다. 당당님이 여기에서 신발을 사러 가기 어려우니, 자신의 신발 깔창을 잘라 내 신발에 맞춰주겠다고 한다. 마음은 감사하나 본인은 어찌할 건가. 내가 아프고 말지…. 폐가 될 것 같아 거절했다. 준비물 주의사항의 ‘신발은 익숙한 것을 신으라’는 말에 충실히 따른다는 것이 도가 지나쳤다. 신발이 이 정도가 되도록 모르고 신다니. 에휴, 민망하다. 당당님이 자신의 깔창을 깔라고 적극 권한다. 어쩌면 내가 잘 걷는 것이 돕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발 크기에 맞춰 깔창을 잘라 내 신발에 끼워 주었다. 눈 찔끔 감고 받아 신었다. 발이 아늑하고 날아갈 것 같다. 발의 감각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자신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신발까지 내어주는 배려와 책임감에 감동했다. 부끄러웠지만 신발 덕분에 나머지 일정을 순조롭게 잘 마쳤다. 이 일을 겪은 후부터 걸을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깔창을 예비로 가지고 다녔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없으리란 법 없지 않은가. 당당님의 훈훈했던 배려를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대신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