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추방당한 선지자, 미리 코로나 백신을 맞은 자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해군 차관으로 일하던 시절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나 살아남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폴리오(소아마비)였다. 앞에서 소개했던 소설 ‘네메시스’에서는 그를 ‘미국에서 폴리오 피해자의 가장 위대한 모범인 FDR’이라고 소개한다. 길렝 바레 증후군은 후대의 논란이다. 오늘날 폴리오는 과거의 병일지 모르지만, 최근에도 발병 소식은 들린다. 2019년에도 폴리오 환자 발병이 보고되었다. 가까운 필리핀에서 폴리오 유행이 선언되었을 때는 2명의 환자가 보고된 뒤였다. 이 환자들은 어떻게 폴리오에 걸린 것일까? 놀랍게도 백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2019년을 기준으로 폴리오에 새로 감염된 사람은 모두 336명으로 보고되었다. 이중 백신 유래 감염자가 241명이다. 자연 상태에서 폴리오에 걸리는 125명보다 많다. 환자 수는 격감했지만 이 수치는 놀랍다. 소아마비 백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2년이었다. 폴리오바이러스를 포르말린으로 죽인 사(死)백신이었다. 죽은 백신이기 때문에 몸에 항체를 만들게 하려면 3번의 접종이 필요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놓는 세 번의 주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1961년에 두 번째 백신이 등장한다. 살아있는 백신을 이용해 경구용, 즉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생(生)백신이 나온 것이다. 미국의 세이빈(Albert B. Sabin)이 만들어 세이빈의 생(生)백신 시럽이라 불렀는데 사탕으로 먹을 수도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생(生)백신이라 효과도 좋아 한 번으로 충분했고, 가격도 저렴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접종을 받게 되자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은 희귀해졌다. 하지만 생백신이 갖는 장점이 단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백신이라 효과는 좋았지만 백신으로 먹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일부 나타났다. 돌연변이에 의한 감염으로 추정했다. 백신 유래 감염 확률은 100만 명당 3명이다. 매우 낮은 수치이긴 하다. 하지만 손놓고 있을 사안은 아니었다.
‘백신 유래 감염’이라는 표현에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백신을 ‘먹어서’ 감염될 수도 있지만, 최근 발생하는 대부분의 폴리오는 생백신을 먹은 아이들의 배설물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가 식수에 섞여 들어가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0년대 말에 생백신에서 다시 사백신으로 회귀하는 저간의 사정이다.
이 백신 이야기의 2021년 판 최신 버전에는 뜻밖에 우리나라가 등장한다. 빌 게이츠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이사장이 최근 국내 굴지의 화학 회사 부회장에게 ‘소아마비 사백신을 개발하여 전 세계 아이들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돼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국내 회사에서 만든 이 백신은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켜 병원성을 없앤 차세대 사백신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안전성이 강화된 백신이다.
소설 ‘네메시스’에는 호러스라는 30대의 백치가 등장한다. 바보나 얼간이로 통하는 이 인물은 어느 날 매우 더러운 모습으로, 악취를 풍기며 아이들이 노는 운동장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에 오물이라도 묻을까 두려워하며 호러스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폴리오의 공포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호러스를 폴리오를 퍼뜨리는 보균자로 지목하고, 호러스에게 저주를 퍼붓고, 호러스를 보호하려는 캔터 선생을 비난한다.
폴리오는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보다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 병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역학적 연구에 의하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때 폴리오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가볍게 병을 앓은 뒤 면역을 얻게 되는데 반하여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중산층 아이들은 폴리오에 취약했다. 빈민층보다 중산계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폴리오 발생이 더 많다는 자료가 점점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건 당국은 비위생적인 환경, 불결함, 가난 그리고 파리를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소설에 파리 잡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다.
어제 1월 19일 저녁 지상파 메인 뉴스 시간에 일부 코로나 완치자가 대학 병원에 출입을 거부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부당한 곳이 대학과 병원이 합쳐진 곳이라는 점에서 문명의 방역이 뚫린 느낌이다. 확진의 저주는 항체의 은혜로 돌아오는 것이 생물학적 올바름이 아니었던가. 미리 백신을 맞은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으로 어떻게 바이오 기업의 주식에 투자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월드의 최우수 등급은 항체를 지닌 확진 경력자들이다. 코로나의 완치자들은, 앞서 세이빈 백신의 100만 분의 3 같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조차 넘어선 활성 백신의 접종자들이다.
코로나 왕국에서 이들 항체를 지닌 슬픈 족속들이, 이들 왕족들이 성문 밖을 서성일 때 앞으로 우리 사회의 코로나 백신 이야기는, 폴리오 백신처럼 거듭된 자기 수정의 과학적 이야기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문명의 방역선을 뚫은 이 바이러스들은 수많은 호러스들을 복제하고, 그때 우리들은 걸어 잠근 아파트 문 뒤에서 파리채를 든 채 숨죽이고 있을지 모른다. 날씨는 낮부터 풀린다는데, 코로나 사태가 시작될 무렵 떠올렸던 김사인의 시 한 줄이 다시 생각난다.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