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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시작과 알림 #30 삶

by 홀로서기

조용한 집이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밖은 서서히 어둠으로 변했다. 이제 내게 묻는 시간이다.


‘ㅇㅇ아,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거니?


무엇을 위해 살 것이고?’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당장에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 다음 달 생활비가 없어 어디로든 몸을 움직여 직장을 구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이는 37세를 넘어가고 있고 능력이라고는 어디 내밀 형편도 아니었다. 구인광고를 보니 일자리는 쭉 나열되어 있다.


솔직히 마음 내키는 곳도 없고 이상한 구인모집만 가득했다. 몸으로 때우는 곳은 아직까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영업을 하면서 늘 정장을 하고 다녀서 그런지 눈은 좋은 쪽만 보였다. 나이와 학력, 경력 부족이라 이력서를 낼 입장도 안 되었다.


이때 후회한 것이 4년 재 대학이라도 나왔더라면 서류라도 넣어 볼 기회가 있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업이 최근까지 해 오던 일이라 후배가 내게 제안한 보험 일 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보험일은 어렴풋이 힘들 긴 하지만 돈이 된다는 말은 희미하게 들은 적 있기도 하다.


후배에게 연락 다시 해 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만남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갔지만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했던 내용들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생각난 김에 내일이라도 전화를 다시 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저녁시간이 되어도 집에 제대로 된 먹을 것이 없었다. 당연한 것이고 이럴 때는 라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솔직히 면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사연이 조금 있다. 왜냐면 나는 아주 어릴 적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께서 식구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것이 국수와 라면이었다.


국수는 푹 퍼지게 하여 면이 퉁퉁 풀어 양이 많았다. 라면도 같은 요리법으로 푹 퍼지게 만들어 먹었다. 성장하는 동안 질리도록 먹었다. 70년대는 가난하게 자란 사람들도 많지만, 왜 하필 경제력이 없는 부모님 중 아버지는 가장이면서 가부장적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3대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머니께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면을 더 먹어야 할지 모른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 먹을 정도이니 그만큼 면을 싫어한다.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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