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반찬이 되는
엄마가 가르쳐 준 적은 없다. 결혼하기 전엔 엄마가 하는 김치를 그냥 먹었다.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결혼하고 엄마와 다른 나라에 살게 되면서도 김치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아이가 둘 생기고, 요리를 잘하는 지인을 만나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다. 그녀는 김치를 담가 먹었다. 한국과 기후가 다른 이곳에는 중부지방 즈음에 농사를 할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고 했다. 한국종을 심으면 비슷한 농산물이 나는 기후가 있다.
요리를 잘하는 누군가를 만난 것도 행운이고, 그녀에게 김치 담는 법을 배운 것도 행운이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김치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많지만, 직접보고 체험을 통해 몸에 익히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아이가 셋인 그녀는 김장을 했고, 처음에는 끼워달라고 부탁했다. 첨부터 과정을 모르니, 몸으로 때우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실 혼자 조용히 해야 쉽고 빠르게 끝나는 활동에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당연히 번거롭다. 이런 과정을 두어 번 거치면서 김치는 어떻게 담는 것인지를 배웠다.
세월이 10년 정도 지난 지금, 나에게 김치 담는 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사 먹는 김치에 물려, 좋은 고춧가루와 믿을 만한 재료를 쓰고 입에 맞는 김치를 먹어보겠다는 열망을 가졌다.
나도 기존에 하던 양보다 두 배로 배추부터 절구어야 했다. 문제는 우리 집 큰 대야- 배추를 절구는 큰 플라스틱 용기- 가 많은 양을 감당하기엔 좀 작았다. 김치는 어찌어찌해서 끝이 났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경험이었다.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었다. 자만은 하지 않았으나, 해 보지 않은 일에서는 항상 변수가 등장했다. 배추의 양이 처음 감당하는 양이라, 다 잘 절궈지지 않았다. 양이 많으니 노동은 힘들었다. 아직 결과가 실패다 아니 다를 가릴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그리고 김치 담는 것에 실패와 성공을 논하는 자체가 우습지만, 실패를 빨리 경험하고 다음 경험에 반영해야 히기에 받아들이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게 되고, '함께'한다는 경험을 했다. 항상 혼자만 알고 적은 범위에서 나누었던 것이 조금 확대되었다는데 나에겐 의미가 있다. 어차피 혼자서 세상을 살 수는 없고, 내가 아는 것은 나누고 전달해서 다른 이에게도 이득을 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리고 그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나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의미있는 첫 발을 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