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늦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지는 동안
공원의 풍경은 오래도록 갈색과 회색 속에 머물러 있었다.
마른 풀은 누렇게 바랜 채 땅에 눕고,
나무들은 잎을 모두 내려놓은 채
거친 갈색 가지만 남기고 서 있었다.
흐린 날이면 하늘까지 희미한 회색이 되어
세상은 마치 무채색으로 그려진 그림처럼 보였다.
그래서 겨울의 풍경은
멀리서 보면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그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아주 미묘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여전히 겨울인데
갈색 가지들 사이 어딘가에
연한 물감이 번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가지 끝마다
아주 작은 연녹색 꽃눈들이 맺혀 있었다.
아직 피지도 않았고
꽃이라 부르기에도 이른 작은 생명들이
갈색 가지 위에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바람에 가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들이 보였다.
겨울 내내 마른 가지였을 텐데
그 가지들은 어느새 옅은 노란빛을 띠며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 낮은 풀 사이에서도
작은 연두색 새싹들이
마른 흙을 밀어 올리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아직 겨울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미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풍경이
사실은 그 안에서
아주 천천히 색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갈색 가지 위에
연녹의 꽃눈들이 점처럼 찍히고
노랗게 빛나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마른 땅 사이에서 작은 새싹들이 고개를 들며
풍경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연하게 채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봄은 늘 그렇게 오나 보다.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터지듯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시간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던 것처럼.
멀리서 보면 아직 겨울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미 봄인 순간.
계절 경계의 세상.
눈에 보이기 전에 먼저 이렇게
아주 옅은 색으로 시작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