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무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상담을 하며 보호자들을 지켜보면, 이런 말이 자주 떠오른다.
보호자들이 불효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의 간병으로 지쳐가는 보호자들을 보면서 차라리 불효자로 남는 게 어떨까 싶을 만큼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직접 24시간 몸이 아픈 가족을, 그것도 가장 심리적으로 친밀했던 가족을 간병해보지 않았다면 간병을 하고 있는 당사자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올해 초에 만난 보호자와의 상담이 떠올랐다.
보호자(이하 딸)라고 하며 방문한 딸은 오랫동안 환자인 엄마(이하 엄마)와 근거리에 거주하면서, 본인이 결혼한 이후에도 매일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주 식사를 같이 하던 사이였다고 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뇌졸중 발병으로 말도, 감정표현도 온전치 않게 된 엄마를 간병하는 일을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한다는 것은 사실상 몸이 두 개 세 개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딸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본인의 감정을 - '왜 그냥 편하게 자기한테 부탁하지 않을까?', '그냥 조금만 더 나을 때까지 병원에 계셔주면 안 될까?'-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엄마를 간병하면서 힘듦이 누적되고 있었고, 엄마가 안쓰러워 보이다가도, 또 마음대로 어린아이처럼 구는 엄마를 바라보며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되었지?' 하고 느끼는 양가감정에 어찌하지 못해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나는 직접 오랜 시간 간병을 해보진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간병을 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여 이런 모습을 참 많이 본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가장 마음을 쓰고 있는 가족은 이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더 잘해드릴 수 없는 환경에
본인이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은 한정이 없었는데, 본인은 고작 몇 달 부모를 간병하며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지 별의별 복잡한 생각들에 간병 기간 동안 보호자들은 더욱 지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위로해드리기 어려워 묵묵히 들어들이고, 대부분의 주 보호자들이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계셨음을 일러드렸다. 본인이 불효자라, 혹은 이상한 사람이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고,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임을.
혼자 멍하니 벽보고 한숨 쉬셨을 그 시간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다독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는 참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다.
아무리 '으쌰 으쌰 힘을 내 봅시다!' 하고 격려를 해도, 병실로 돌아가면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는 환자의 모습과, 매일매일 늘어가는 진료비와 수납 독촉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힘을 잃게 하는 이런 요인들은 병원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러저러한 상담으로 보호자 분과 40여 분 간의 긴 상담을 마무리했다.
신경과 치료부터 장기간의 재활요양치료까지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보살피고 있는 보호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비슷한 혼란스러운 그런 시기를 거치고 있음을 알고 가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딸이 처한 상황에서 딸 본인은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또 격려를 받고, 더 애쓰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에 조금은 기대어볼 수 있도록 지지를 받으셨던 시간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깊고 무거운 간병의 무게를 감히 어떻게 내가 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