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단문
모두 주고, 모두 내던지고 떠나려는 게지.
그러기에 저처럼 홀라당 나신을 드러내는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제살을 바람에 떠억 내맡기겠나.
시린 가슴 부여안다가 젖어버린 설운 잎새
늦더위 물리치며 붉게 치장한 게 아직 엊그젠데
어찌하다 가지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고독 견디지 못해 바삭 마른 이파리 되어
애당초 이별에 불과한 게 삶이 아니겠냐고 바스락,
몸 뒤틀어 바람에 항변하다 그예 스러진다.
드러누워서라도 천년만년 살 거라는 마지막 욕구마저
곧 몰아칠 초겨울 삭풍이 휘감아 버리겠지.
山아 山아!
도야淘冶하고 또 도야한 수도승처럼 그댄 어이 한결같이 꼿꼿하기만 한가.
붉은 정렬, 노란 요염함을 끝내 지켜주지 못하느뇨.
빛에 젖고 바람에도 젖어 윤이 나는 치장을 그리 쉽게 벗어던지느뇨.
냉담한 진리만을 고수하려 홍진紅塵의 티를 씻고
가연佳緣을 알리려 청사초롱 밝히시는가.
다 벗어 헐거워진 몸에 하얀 분칠 하려 기다리는 중이신가.
그도 아님 변화무쌍한 세월의 반복에 짜증이라도 나셨는가.
육중한 몸 푹 덮어줄 푸른 지붕이 있으니 딴맘 품을 새가 없으신가.
그대 찾는 길손들에게 뭐든 전할 작은 메시지라도 있지 않겠는가
속절없이 지는 마른 갈잎이 가엾다는 입바른 소리라도 있어야지 않겠는가
바람 그치고 햇살 숨어 어둠이 내려온들 전혀 개의치 않겠지마는
지워도 지워도 내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었노라고.
깔린 낙엽이 설워 속으로 속으로는 곡을 하고 있노라고....
山아 山아!
그대 입 다물어 결코 들리지 않는 메시지, 그대 울음소리
넌지시 들을 수만 있다면 후끈 뭉클해지는 마음 가눌 수 없을 것 같구나.
어쩌다 그 소리 귓전을 스치기만 하더라도 머리끝 발끝까지 경련이 일 것 같구나.
山아 山아!
이 계절은 차마 사랑 없인 살지 못할 잔인한 애모의 시절이 아니던가.
가득 꿈에 부풀었던 절정을 뒤로하며 흐르는 세월에 목이 메일 때가 아니던가.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다시 또다른 봉우리로 건너가도
내내 미지근한 햇빛 느릿하게 기울다가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우니 그제야 물길 트였구나.
이때라, 입술 빗겨물며 울먹이다 편하게 목 놓아도 계곡 하류
센 물살이 감춰주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