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걷혀 드러난 산봉우리에 서있는 예수와 유다

한림 단문 - 멘토와 비토

by 장순영

"미안해, 5분 정도 늦게 도착할 거 같아."


친구 A는 상대의 시간을 자신의 지갑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숱한 세월, 숱한 약속을 하며 만났는데 단 한 번도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겨우 5분 정도 늦을 뿐인데 미리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되레 미안해진다.


친구 B는 빌려간 돈을 갚기로 약속한 날이 하루가 지났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생각할수록 슬금슬금 담을 기어 넘어가는 구렁이를 연상케 한다. 이 친구는 약속시간에 20분이나 늦으면서도 한 마디 전화는 고사하고 도착해서도 잘못된 게 전혀 없다는 표정이다. 돌이켜보니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킨 적이 있었나 싶다. 당연히 B와의 만남이 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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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일면만 봐도 느낌이 오듯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매우 강하고 이해타산 없이 베푸는 게 습관처럼 몸에 뱄다. 그에게 더욱 호감이 가고 친밀감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반대로 B가 적극적이고 열정을 보일 때는 자신의 이해와 관련될 때이다. 그런 때 그는 절대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든다. 신뢰가 추락한 친구, 이해타산에 급급한 친구와의 사이가 가까워질 수 없음 또한 인지상정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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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존경하는 역사상의 위인도 있고 안티로 삼게 되는 인물도 존재한다. 누군가에 대한 존경심이나 배척하는 마음은 역사서나 인물평전을 읽으며 생기기도 하고 방송매체 등을 통해 우러나기도 하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함께 우정을 나누는 친구 간에 그 마음이 절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직접 대하며 느끼기에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존경심이 생기고 그 반대의 감정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때 장점을 도드라지게 보는 스타일이라 쉽사리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그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치명적(?) 단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느끼는 실망감도 적잖이 생기곤 했었다.

실망이 극에 달할 때 거리를 두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마음이 들라치면 다리가 접질리는 아픔을 수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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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모습에서 동시에 유다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던가.

한결같은 신뢰를 주며 여전히 자신의 친구를 배려하는 A는 필자로 하여금 글 쓸 소재를 제공하고 떠오를 때마다 미소를 짓게 한다. 저 자신도 모르게 삶의 멘토mentor로 존재하게 된다.

B와의 멀어짐은 필자 스스로의 더 큰 잘못으로 연결되어 접질린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친구가 비토veto적 존재로 추락한다는 건 상처가 고름으로 덧나 후유증을 앓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의 모습에서 유다를 보게 되는 건 엄청난 과오이며 동시에 커다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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