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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Aug 04. 2024

3. 러시아

3-1 비행기에서 만난 호의

비행기 타는 사람들 중 한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괜히 첫출발부터 돈을 아끼고자 러시아 항공사 비행기를 끊었나. 키가 크고 낯선 외양의 러시아인들 속에 있으니 괜히 위축됐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고, 바람이 거셌다. 난기류에 비행기가 많이 흔들려서 겁이 났다. 비행 중 선체가 크게 요동치는 순간이 있었는데, 혹시 이러다 잘못되면... 하면서 불안했다.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옆에 있는 러시아 여성분이 괜찮다고 웃으시면서 손을 잡아주셨다.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자,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당시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별일 없이 도착해서 다행이지만 내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리고 나면 정말 혼자 뿐이라는 생각에. 날이 궂고 어두운데 막차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 어쨌든 걱정은 걱정이고, 도착했으니 내려야만 했다. 줄을 서서 내리는데, 귀에 꽂히는 한 목소리가 있었다. 러시아어 사이에 들리는 한국말이었다. 누군가 공항에 마중 나온 지인에게 곧 내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찾았다. 저분께 어떻게 가는지 여쭈어 봐야겠다.'


그분께 다가가 슬쩍 말을 걸었다. 도움이 급하니까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러시아에 혼자 오신 거예요?"


혼자 왔다고 말을 하자, 그분께서 위험하다며 마중 나오는 일행의 차로 같이 가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냉큼 감사하다고 했다. 불안하니까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았다. 참 겁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그건 정말 순수한 호의었다. 그분과 일행 분은 자기들을 선교사라고 소개하셨다. 비행기를 타신 분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선교사 컨퍼런스가 있어 오신 것이고, 일행 분은 현지 선교사라고 하셨다.


붉고 푸른 불빛이 차창 빗방울을 통과해 차 안으로 흩어졌다. 불빛 사이로 볼 수 있는 건 흔하디 흔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었다. 그리고 에어컨 바람과 함께 들리는 두 분의 담소 소리. 아직까지는 한국을 떠나온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만난 분은 먼저 숙소에 내리시고 현지 선교사님이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러시아 가게들은 간판이 작거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약한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말 감사하게도 선교사님은 비바람을 맞으며 현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숙소를 찾아주셨다. 혼자였으면 어떻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을까....


숙소 이름은 바베이도스. 원래 여행 중 세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날 때가 많은데 첫출발이어서 그런가 숙소 이름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냥 이름이 특이하려니 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휴양지였다.


헤어지기 전에 현지 선교사님께서 다음날 일정이 없으면 자신의 아내가 시내를 구경시켜 줄 수 있는데 어떻냐고 제안하셨다. 만약 괜찮다면 아침 7시 근처 카페로 가서 아내를 만나면 된다고 하셨다. 공항부터 계속된 친절이 신기해서 또 좋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밤이 늦었고, 도미토리 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잠이 든 상태라 불이 꺼져 있었다. 내가 사용할 침대는 곰팡이 냄새가 약간 느껴지는 일층 침대였다. 아까까지 정신없다가 이제야 아늑한 집에서 떠나온 실감이 났다. 따뜻한 물로 몸을 지지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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