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모로코

5-5.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by WPE

마라케시는 굉장히 요란한 도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큰 야시장이었는데, 살면서 이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장 분위기는 처음 겪어봤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상인들은 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계속했고, 그 와중에 묘한 아랍풍의 음악소리가 연신 울려댔다. 수많은 무리들은 밤늦게까지 시장을 떠날 줄 몰랐다.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길 계속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침이 되면. 밤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길바닥에 남겨진 쓰레기들로 지난밤 일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여기를 끝으로 모로코 동행들과는 헤어지고 그들은 모로코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동했다. 나는 조금 더 모로코에 있기로 했다. 모로코에서 마지막 목적지는 카사블랑카였다. 그곳에서 치과를 운영하시는 한국인 분의 집에 머물 예정이었다.



세상은 넓고 또 넓지만 연결돼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듯하다. 한국에서 치위생 사업을 운영하시는 지인이 내가 모로코에 간다고 하자 그분을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지구 저 멀리 있는 사람이지만 한순간에 연이 생긴 것이다. 카사블랑카에 도착하기 전 연락을 드렸더니 자기는 그날 바빠서 배웅을 나가지는 못할 것 같고, 조카가 대신 기차역으로 마중 나갈 거라고 하시며 그분의 연락처를 전달해 주셨다.






기차를 타고 카사블랑카 역에 내리니 이미 저녁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마중 나온 한국 분을 찾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카분께 도착했다고 연락을 드렸는데 답장이 없으셨다.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다. 그런데 충전선이 고장이 났는지 핸드폰이 충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충전선은 정품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충전이 됐다 안 됐다 하더니 아예 말을 듣지 않았다. 왜 하필 이럴 때 고장 나 버린 걸까.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이젠 배짱이 좀 두둑해졌는지, 그분이 오시긴 하겠지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금방 꺼질 것 같은 핸드폰도 간당간당하게 목숨을 유지했다. 여러 대의 기차들이 도착하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기차역에 오는 사람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카사블랑카에는 딱히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게 아니라, 관광객들은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 뒤에 한 중년의 한국 분이 승강장에 나타나셨다. 그분은 아무리 봐도 내가 찾는 분은 아니신 것 같았다. 짐가방을 손에 들고 계신 그분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분은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 보였다. 낯선 이국땅 늦은 시간에 홀로 승강장에 있는 고국 사람은 뜻밖이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시죠? 여기 왜 혼자 계신 거예요?"



"여기에 치과의사로 일하시는 분을 뵈러 왔어요. 제가 잘 아는 분은 아니고요,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어요. 그분은 바쁘셔서 대신 그분 조카가 저를 마중 나온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에요."




"여기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데.. 치과 의사라고 하니 누군지 알겠네요"




갑자기 나타난 한국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셨다. 미소 지은 듯 하나 묘하게 차가웠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고 싶진 않은 표정이었다.



keyword
이전 18화3. 모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