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카사블랑카
“정말요? 두 분이 잘 아시는 분이었나 보네요”
“잘 알지요.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몇 명 없으니깐요. 그런데 교류를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지요.”
“ 그렇군요. 그런데 어디를 가시는 길인 건가요? “
“다른 지역에 세미나가 있어서 가는 길이에요. 이제 곧 기차가 올 것 같으니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안 오시면 다른 숙소에 가보려고요 “
다른 숙소를 어떻게 가겠다는 건지 별다른 대책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신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이만 저는 가볼게요. 조심히 머물다 돌아가세요.”
그분이 가시고 또다시 혼자 기차역에 남겨졌다. 핸드폰이 거의 꺼져가자 대책 없이 자신만만하던 마음도 점점 어두워졌다. 정말 딱 그때쯤 핸드폰 알림이 떴다.
‘정말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핸드폰을 확인 못했어요. 얼른 가겠습니다.’
답장 하나에 어찌나 안심되던지. 핸드폰이 꺼지기 전에 후다닥 답장을 보냈다.
얼마 안 있어 조카분이 나타나셨고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그분의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작고 아담한 가정집을 상상했는데, 널찍하고 방이 많은 큰 집이 나타났다. 안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소개받은 지인분께 가서 인사드렸다.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그리고 늦게 데리러 가서 미안해요. 이번 주 내내 직원 교육이 있어서 여기 있는 모두가 바빠요. 조카도 하루종일 돕다가 그만 깜빡했나 봐요”
“아니에요. 저는 초대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갑자기 문뜩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한국분을 만났는데, 선생님과 아시는 분 같더라고요. 한국인이 혼자 기차역에 있으니 걱정되셨는지 먼저 말을 걸어주셨어요. 오늘 다른 곳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가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에 사는 한국 분이 많지 않은데….. 오늘 세미나가 있어서 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
선생님은 잠깐 생각에 잠기셨다.
"그분이 키는 좀 작고 마르셨나요?”
“네. 그리고 안경은 쓰지 않으셨어요. 눈은 쌍꺼풀 없이 작은 눈이었고요.”
“그분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음……. 선생님과 아는 사인데 교류는 많이 없다고만 하셨어요. 그 외 딱히 별말은 안 하셨어요.”
“그렇군요. 예전엔 교류가 좀 있었는데 지금은 없죠. 그 양반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먼저 말을 걸다니, 신기하네요. “
데자뷔처럼 스쳐가는 묘한 표정이 선생님의 얼굴에도 드러났다.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원래 교류했던 두 분이 무슨 일로 인해 멀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어서 어느 시점에 나에게 좋았던 사람이 언제나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지금 이 시점에 만난 선생님은 나에게 호의적인 분이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한국에서 오신 치과 의사분들이세요. 교육을 도와주러 왔고 일주일 정도 여기 계실 분들이세요. “
“삼촌, 근데 손님이 어떤 방을 쓰시면 좋을까요? “
“아 그러게. W씨랑 그나마 제일 나이가 비슷할 거 같은데 그쪽 방을 같이 쓰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번 주 내내 교육이라서 손님을 잘 챙겨드리지 못하니 너한테 부탁 좀 할게. W씨도 한가할 테니 같이 놀러 다니면 되겠다. “
“알겠어요. 그럼 안내해 드릴게요 “
방에는 긴 염색 머리에 호리호리하신 여자분이 계셨다. 선생님의 말대로 지금까지 집에서 보았던 분 중 가장 젊은 분이셨다.
"W씨 요새 할 일 없어서 너무 행복해 보이는데요. 내일 시내로 놀러 갈래요?"
"시간이야 많죠. 근데 갑자기 웬 데이트 신청?"
"풋 데이트라니. 데이트는 아니고요, 셋이 갈 거예요. 여기 손님과 함께요."
"손님이요?"
"제 옆에 계시잖아요. 서로 인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