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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Apr 20. 2024

서울 능금마을에 능금나무를 심다

나무학교 학습일지

2024년 4월 2일, 식목일 3일 전입니다.

오늘 최고 온도 23도, 최저 온도 11도, 구름이 적당하니 나무 심기 좋은 날입니다. 토종과일나무학교에서 주최하는 능금나무 심기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에 있는 능금마을입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이곳은 능금마을로 불렸는데, 지금은 능금이 많이 없어져 요즘 마을 주민들과 토종과일나무학교 장영란 선생님이 복원사업('부암동 능금나무 살리기 프로젝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광화문에서 보면 청와대 뒤편을 가로지르는 스카이웨이 즉, 북악산로 뒤편의 북쪽 경사면 계곡에 위치합니다.


오늘 행사를 위해서 어제는 인터넷으로 사전 학습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요 내용은 1) 토종 과일나무와 능금나무에 대한 이해, 2) 어떻게 능금나무 심기에 이르렀나? 그리고 3) 나무 심는 법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토종 과일나무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정금 : 토종 블루베리 

2) 오얏 : 토종 자두

3) 개암 : 토종 헤이즐넛

4) 능금 : 토종 사과


토종과일은 요즘 시장에서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상품성이 없어 잘 팔리지 않고 맛도 요즘 과일보다는 떨어지니 환영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장영란 선생님은 토종과일나무에 이렇게 관심이 많으실까? 수업 시간 내내 궁금했습니다. 토종이란 원종, 즉 원산지 품종이 아니라도 수십 년 이상을 어떤 한 지역에 정착하여 유전적으로 안정된 품종을 토종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 지역에 완전히 정착한 품종인 것이지요. 


나무시장에서 묘목을 사다 심어 보면 개량된 품종이나 외래 품종은 잘 죽습니다. 채리나 서양 자두는 묘목을 사서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뽕나무나 개복숭아, 매실 등 주변에 친숙한 나무들은 묘목을 대충 심어도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아무 때나 이리저리 옮겨 심어도 잘 버텨줍니다. 토종 나무란 그런 것 같습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즘 같이 환경 변화가 심한 시대에는 토종과일나무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 능금나무가 혹시 아열대나 열대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사과나무로 변신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전통과일나무의 존재 가치가 주목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어떤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었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서유구(1764-1845)가 지은 『임원경제지』의 <만학지> 외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답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중국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들이 살고 있던 '조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탓입니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문화에 대한 열등감이 한몫을 했을 것 같습니다.


능금은 삼국시대의 <처용가>에서도 등장하고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주1) 고려가요 <처용가>를 보면 능금이 나오는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안에 있는) 능금(내柰, 멋), 자두, 녹리(綠李)야! 빨리 나와 내 신발끈을 묶어라.

그렇지 아니하면 재앙을 내리리라동경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내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구나. 아! 둘은 내 것이거니와 둘은 누구 것인가?"


이 노래에 능금과 자두가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일반 민중에게 친숙했던 가요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능금이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면 능금은 옛날에 '멋'이나 '버찌'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장영란 선생님이 찾아내 보존하고 있는 능금나무는 평창 진부령, 정선 사북 그리고 부암동 능금마을의 능금나무라고 합니다. 부암동의 능금나무는 2022년 8월 탐방하여 발견하였고  그다음 해 꽃구경을 했으며 금년에 능금나무 묘목 심기를 하는 것입니다. 금년 8월 15일에는 심어 놓은 능금 상태를 확인하러 다시 방문할 계획입니다. 


나무 심는 요령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만학지>에는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나무가 옮기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심는 요령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무 심을 자리를 뿌리 크기의 2-3배 넓이와 깊이로 판다.

2) 물을 붓고 물이 빠지는 것을 확인한다. 물이 잘 빠지는지 안 빠지는지 확인.

3) 접목 부위가 약간 땅 위로 나오게 묻는다.

4) 구덩이의 80-90%를 흙으로 채우고 물을 흠뻑 준다. 흙을 채울 때는 공기구멍이 생기자 않도록 주의.

5) 물이 다 빠지면 마른 흙으로 덮어 준다. 습기가 유지되도록.

6) 나무 둘레에 빙 둘러 물집을 만들어 둔다. 물을 줄 때는 그곳에 줌.

7) 지줏대를 비스듬하게 박아 나무와 함께 묶어 준다.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오늘 아침 일찍 저는 정릉 쪽에서 출발했습니다. 세검청 초등학교 부근에서 모이는 시간은 10시 30분입니다. 정릉의 성북공원에서 능금마을 인근의 백석동천까지는 대략 6km이며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먼저 북악 스카이웨이를 향해서 걷다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숲 속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주민에게 물었습니다. 


"북악 스카이웨이에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는가요?"

젊어서 종로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직원 가운데 자가용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있으면 가끔 직원들이 함께 북악 스카이웨이에 올라가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북악 팔각정 찾나요? 이길로 계속 가시면 돼요."

"아니요 북악 스카이웨이요."

이렇게 답하니 대답하는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무슨 말인지?" 하는 표정입니다. 

옆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이 알려줍니다. 

"북악 스카이웨이는 지금 올라온 그 도로예요. 그 길로 다시 가시면 돼요."  


알고 보니 북악 스카이웨이는 차량이 다니는 길을 말하고 그 중간에 있는 팔각정은 북악 팔각정 혹은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북악 스카이웨이 옆으로 산보하기 좋게 만들어놓은 산책로는 북악 하늘길이라고 합니다. 스카이웨이가 한국어로 번역하면 '하늘길'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열심히 했는데도 몰랐습니다. 종로에서 보면 멀리 북악산 쪽 높은 곳에 있는 길이 북악 스카이웨이인데 바보같이 북악 팔각정을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북악 스카이웨이 가자." 하면 항상 북악 팔각정에 커피 마시러 갔기 때문에 생긴 착각입니다. 


덕분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지름길을 찾아서 급한 마음에 스카이웨이에서 북쪽 산비탈로 빠져 평창동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급경사 지역입니다. 1968년에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했을 때 올라온 비탈이라고 합니다. 경사도가 45도나 그 이상이 되는 길입니다. 숲 속 길 중간중간에 노란 개나리가 피고 있습니다. 햇살이 따뜻해 완연한 봄날입니다. 서울 예술고등학고 뒷문으로 들어가 운동장, 정문을 거쳐 대로변(평창문화로)으로 내려갔습니다.


10시 반경에 겨우 세검정 우체국 근방, 세검정 6 다길에 있는 정자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일행과 출발해 현통사를 거처 백사실 계곡으로 올라가니 능금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 마을은 정말로 서울 안의 산간벽지 오지마을이며 두메산골입니다. 마을 주민들 이야기로는 멧돼지도 자주 나타난다고 하니 정말로 깊은 산골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차량도 주차되어 있습니다.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있다고 합니다. 백석동 2길로 나가면 북악산로로 통한다고 하니 차량은 그 길로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빙돌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북악산로에서 평창동으로 내려가지 않고 백석동 길을 찾으면 마을 위쪽에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몰랐습니다.종로에서 걸어오면 청와대 옆길을 통해서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곳은 건물도 낡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깡촌인데 소속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이고, 아주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조선시대 숙종 때는 20여만 그루의 능금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주2)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장 선생님은 무주에서 능금나무 묘목을 많이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강화도, 무주 등에서 온 사람들로 20명쯤 되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서울 부암동과  인근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으며 나무 키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번에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묘목 2그루를 심었습니다. 


마을의 넓은 계곡 안 양지바른 곳에 묘목 구덩이를 팠습니다. 흙이 보드랍고 푹신푹신하여 몇 삽 뜨지 않았는데 쉽게 넓은 구덩이가 생겼습니다. 그곳에 물을 퍼온 사람이 먼저 물을 부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물이 잘 빠집니다. 거기에 능금 묘목을 넣고 흙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가득 부어주었습니다. 다시 흙을 덮고 지지대를 비스듬히 박아 묶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묘목을 직접 키우신 전문가 선생님의 지도와 확인을 거쳤습니다. 저는 그동안 5년 정도의 기간 중에 제 텃밭 주변에 나무 묘목을 100여 그루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살아남은 묘목은 손에 꼽습니다. 그러니 나무를 심을 때면 "잘 심었는지?" 아니면 "살아남을지" 항상 걱정입니다. 나무는 잘못 심어도 금방 티가 나지 않고 어떤 나무는 죽어가면서도 3, 4년을 삽니다. 나중에 그 나무가 죽으면 정말 실망이 큽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문가 선생님이 옆에 있으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곳 능금마을은 정말 시골 마을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여늬 시골처럼 나이 든 분들이 많고 소박합니다. 어떤 할머니는 젊었을 때 능금 파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을에서 능금을 따서 서울 시내로 나가서 파는 이야기입니다. 시내에 나가 길거리에 능금을 펴놓고 있는데 경찰이 불법이라며 그것들을 다 압수해 가버렸다고 합니다. 나이가 80쯤 되시니 아마도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면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경찰들과 공무원들은 인정사정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는 울면서 북악산 길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겠지요.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그게 복이고 행복입니다. 오늘 심은 능금나무가 부지런히 커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 주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주1) 김기철, 「“능금을 알면 자본주의 발전사 보인다”-‘한국 능금의 역사-기원’ 책 낸 이호철 교수」, <조선일보>, 2002.6.17.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6/17/2002061770361.html

주2) 곽동운, 「서울 한복판에 왜 사과마을이 있는 거예요? - 창의문과 능금마을」, <오마이뉴스>, 2015.07.12.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26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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