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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뛰는 10km 마라톤 후기

by 임태홍

2025년 2월 16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기온부터 체크했습니다. 6시 10분경 지금 서울은 영하 1도, 오전 8시에는 0도까지 오르고, 한참 달리는 시간인 9시경에는 1도, 10시에는 3도까지 오른다고 합니다. 옷을 두껍게 입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22회 희망드림 동계국제마라톤대회가 있습니다. 출발지는 여의도 한강공원 마포대교 부근 아래 물빛광장입니다. 출발시간은 오전 8시. 32km는 8시 정각에 출발하고, 하프는 8시 30분, 10km는 40분, 5km는 50분에 출발합니다.


6시 40분경에 집을 나섰습니다. 밤새 보슬비가 내렸는지 땅바닥이 물기로 반짝거립니다. 거리는 아직 어둑어둑한데, 멀리 골목길 사이로 붉은 십자가가 보이고 그 위로 둥근달이 떴습니다. 아직 검푸른 새벽하늘. 공기가 차갑습니다. 현재 온도는 0도, 30분 만에 1도 올랐습니다. 체감 온도는 -3도. 습도는 88%입니다. 오늘 최악의 경우 비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신설동 역으로 가서 1호선을 바꿔 탄 다음에 종로 3가에서 여의나루역까지 5호선으로 이동합니다. 여의나루 역에 내리니 마라톤 참가자들이 많습니다.


역 대합실 한쪽에는 마라토너들을 위한 휴게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부지런히 뭔가 준비를 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번호표를 달고, 몸을 잔뜩 구부려 운동화에 기록칩을 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빨리 물품 보관소로 가야겠습니다. 바깥에 나오니 8시경, 지금 온도는 아직 1도, 체감 온도는 -2도, 습도는 89%입니다. 날씨가 더 흐려졌습니다. 춥지는 않은데 흐린 날씨가 몸을 움츠려 들게 합니다.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트레이닝 복 긴바지를 입고 위에는 방한용 셔츠를 입었습니다. 그 위에 얇은 잠바를 입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그냥 들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입었지? 잠바를 입은 사람도 많고 셔츠만 입은 사람도 많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과감하게 보관용 비닐에 잠바를 담아 물품보관소에 맡겼습니다.


오늘 참가자는 4,00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10km 코스는 8시 40분 출발하니 아직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10km 코스는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 있는 물빛광장에서 출발하여 국회의사당을 좌로 돌아 양화대교 쪽으로 직진한 뒤, 성산대교, 월드컵대교를 지나 곧바로 되돌아옵니다. 출발점에서 국회의사당 뒤 쪽까지가 대략 2km, 거기에서 반환점이 있는 월드컵대교까지가 대략 3km입니다.


출발선으로 가니 하프 20km 뛰는 사람들이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하세요. 준비..... 출발!" 출발신호와 함께 하프팀이 출발했습니다. 역시 전문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출발 속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체격들도 다들 좋습니다. 마라톤으로 만들어진 몸매일까? 군살이 없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하프팀이 몰려나간 한참 뒤, 10km 팀이 출발 준비를 합니다.



저는 비교적 앞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속도가 워낙 느리니 뒤로 가도 되는데. 앞부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역시 군기가 바짝 들었습니다. 옆 사람은 반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었습니다. 아직 날씨가 추운데. 몸을 떨고 있습니다. 그 옆사람은 은박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그도 역시 반팔,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출발준비! 10km 출발!"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뒤에서 달려 나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빨라서 저는 길 가로 밀려났습니다. 도로 한 편의 하얀 차선을 밟고 달립니다. 잠바를 안 입고 달리기를 잘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니 벌써 몸이 후끈해졌습니다. 양쪽 팔의 셔츠를 걷어 올립니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달리는 사람들이 부러워졌습니다. 하늘은 아직 흐린 날씨. 달리면서 부딪히는 강바람이 시원합니다.


이번 달리기 목표는 쉬지 않고 달리기입니다. 힘들다고 걷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기. 그리고 숨이 차지 않게 달리기입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꾸준히 달리면서 지치지 않게 호흡조절을 잘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5km 반환점까지는 몸 풀기, 반환점을 돌아서는 조금 속도를 내보는 것. 이것이 오늘의 목표입니다.


어느덧, 국회 주차장을 지나 의사당 건물을 뒤로하고 조그만 터널을 지나 양화대교 쪽을 향해서 달립니다. 달리는 도로가 물가에 가까워지니 비릿한 물 냄새가 몰려옵니다. 상쾌한 냄새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의 냄새입니다. 물고기들이 많이 있을까? 멀리 물 위에 떠 있는 준설선이 보입니다.


달리다 보니 뒤에서 '타타타타 타타타타'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지? 땅바닥을 박찰 때 그런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진 운동화일까, 몇 사람이 마치 탱크부대처럼 돌진해 옵니다. 5km 달리는 선두그룹일까? 뒤이어 많은 사람들이 또 나타나 빠른 속도로 저를 추월해 갑니다. 엉덩이 관절 한쪽이 불편합니다. 지난번 달릴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한쪽이 삐그덕거립니다.


급수대가 나왔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지나칩니다. 월드컵대교를 지나 가양대교를 향해서 달립니다. 오른
쪽 한강 너머로 멀리 난지도가 보입니다. 가끔씩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서 지친 사람들입니다. 5km 달릴 때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10km 달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기 페이스 관리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매우 드물게 제 앞에서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거의 5km를 뛰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온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달립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달리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된 사람, 하늘을 보며 달리는 사람, 지쳐서 금방 쓰러질 듯한 사람.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도 얼굴 표정에 변함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체격도 좋고 얼굴 윤곽도 뚜렷한 어떤 여성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선글라스만 끼면 대통령 차량 옆에서 달리는 경호원입니다.


나는 뛰는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대회본부에서 올려준 2km 지점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입은 조금 벌린체 한쪽 먼 곳을 쳐다보며 달리는 모습이 잔뜩 기가 죽어 있습니다. 5km만 달리다가 10km로 옮겨오니 뛰는 거리에 기가 죽고 사람들 달리는 속도에 기가 죽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독기를 품고, 욕심을 내서 달려야겠습니다.


식수대 앞에 멈춰 서서 잠시 걸으며 물을 먹으러 가는데 어지러웠습니다. 쓰러질까 봐 조심조심 물을 집어 조금씩 마십니다. 어지럼증으로 인한 사고는 보험처리도 안된다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사방을 둘러보고 제 자신이 괜찮은지 확인한 뒤에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돌아오는 길. 몸은 완전히 풀려서 뜨거워졌습니다. 속도를 내볼까? 하지만 마음대로 안됩니다. 그냥 달리는 대로 머리를 숙이고 차선을 바라보며 달립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멀리 드넓은 한강이 보이고 한강을 가로질러 다리들이 보입니다. 심호흡을 하려고 하는데 오른쪽 길 위에 달리는 차량들이 많습니다. 마라톤 코스가 차선과 붙어 있습니다.


앞서 달리는 남자가 여자에게 말합니다. "다 왔어! 다 왔어! 조금만 힘내요." 부부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3km나 남았습니다. 5km 코스라면 반이 넘게 남았는데. 10km를 달리니 3km 정도는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긴 해도 한참을 더 달려야 합니다. 앞으로 1시간은 더 달릴 생각으로 달립니다. 정말 1시간을 더 달리라면 달릴 수 있을까? 20km를 달릴 수 있을까? 아직 지치지 않았으니 이대로 계속 달리면 됩니다.


멀리 정면으로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입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둥근 돔이 점점 더 커집니다.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경사가 급하지 않으나 그래도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천천히 올라서 달리다 터널을 지납니다. 조그마한 터널. 최고 높이는 2.2m입니다. 저같이, 키 작은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트럼프 아들같이 키 큰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달려야 겠습니다. 다시 오르막이 있고 좌측으로 빙돌아 달립니다. 왼편으로 키 작은 나무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혹시 벚꽃 묘목일까? 여의도 벚꽃길에 오래된 벚꽃나무가 많으니 그것들이 시들면 바꿔 심으려고 키우는 것일까? 그런데 가지 끝에 말라서 누렇게 변색된 꽃 뭉치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습니다. 무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나중에 지도로 확인해 보니 이곳이 무궁화동산입니다.)


아직도 2km 정도 남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점점 더 멀어집니다. 깊은숨을 몰아 쉽니다. 산소가 몸안 깊숙이 퍼지니 지친 근육이 다시 생기가 돕니다. 도로 아래에 그어진 하얀 차선이 뒤로 뒤로 빠르게 밀려납니다.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1시간을 더 달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땅만 보고 달립니다. 깊은숨을 부지런히 들이쉬며 앞으로 한 시간을 더 달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달립니다.


여의도 국회 주차장을 지나, 축구장과 수영장을 지났습니다. 어디에선가 노래가 들립니다. "내 반쪽 아니 완전 Copy 나와 똑같아 내 맘 잘 알아줄 ASAP 꼭 닮은 내 Decalcomanie 눈앞에 나타나 줘." 스테이씨의 ASAP이라는 노래입니다. 노래에 맞춰서 달려보려고 하는데 뭔가 박자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노래가 나오지? 달리다 보니 눈썰매장입니다.


마지막 1km 남았습니다. 몸 상태를 점검해 봅니다. 발바닥과 발목. "이상 없습니다." 무릎 관절. "이상무" 엉덩이 관절. "왼쪽이 불편했는데 그 상태로 크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마지막 스퍼트를 해볼까? 그런데 힘이 없습니다. 바닥났습니다. 그럼 근육으로 달려볼까? 그동안 헬스장에서 근육 운동을 열심히 한 효과가 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몸을 낮추고 100m 달리는 자세를 취합니다. 손바닥을 쭉 펴고 몸을 더욱 낮추고 앞으로 구부려 온몸 근육에 힘을 주면서 달립니다. 앞으로 앞으로 일직선으로 달립니다. 깊은숨을 몰아쉬며 계속 달립니다. 앞에 가던 몇 사람을 추월했습니다. 대회 아치가 보이고 이윽고 파란색의 도착선을 넘었습니다.

메달과 간식을 받았습니다. 물을 마시고 풀밭 한쪽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임태홍 님 기록은 01:05:39.05입니다."


10km를 달리니 이런 호사가 있습니다. 자동으로 기록을 체크해서 곧바로 알려주다니. 그렇지 않아도 기록이 얼마나 나왔는지 궁금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지난번 10km를 처음 달릴 때 기록은 1시간 16분. 10분 정도 단축했습니다. 기록 단축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입니다. 좀 더 바짝 정신 차리고 달리면 1시간 안에 들어올 수도 있겠습니다. 이날 10km 1등은 34분 14초였습니다. 하프코스 남자 기록은 1시간 10분 53초였습니다.


<추가>

마라톤 끝나고 이날 밤은 아주 잠을 잘 잤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2, 3일간은 온몸이 뻐근했고, 넓적 다리 부근에 약간의 근육통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스퍼트를 할 때 근육을 너무 많이 혹사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감기에 걸렸습니다. 마라톤 뛰고 온 날 저녁에 춥게 잤더니 감기가 심했습니다. 감기 덕분에 일주일 정도 몸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변종 코로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몸과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한 과정이겠지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서서 달린 저에게 자연이 준 귀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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