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날 국회 앞 광장 2 - '평등'

by 임태홍

시간은 정말 빠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벌써 4개월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2025년 4월 3일. 내일 헌재에서 탄핵 심판의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란 참으로 지루하고 복잡합니다. 계엄을 일으킨 내란범의 온갖 변명을 다 들어주고 그것을 가지고 8명의 법관들이 심판을 합니다. 심판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역사는 크게 달라지겠지요. 내일의 결과를 기다리며, 지난 탄핵날(2024년 12월 14일) 국회 앞 광장을 회상해 봅니다.


12월 14일, 오전에 국회를 한 바퀴 돌아보며 산책을 했습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한창 기세등등한 날. 다행히 햇살은 아주 밝고 따뜻했습니다. 오후 3시경. 국회대로에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얼마나 모일까? 100만 명쯤 모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모일까? 나중에 뉴스 기사를 보니 200만 명이 모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사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동원해 조사하여 52만 명쯤 모였다고도 합니다.(주 1) 그 기사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모인 사람들 중에 20대 여성이 가장 많고 10대 남녀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60이 넘은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넘겨주고 물러가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희망적이고 다행인 것은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이 너무도 훌륭하다는 사실입니다.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초강대국 시민의 자질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저는 국회대로를 빠져나와 여의도 공원 쪽으로 갔습니다. KBS방송공사 앞길로 가는데 도로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통령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칩니다. 탄핵 찬성이 아니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대와 연단도 갖춘 시위대인데 50여 명쯤 되어 보입니다. 경찰은 빙 둘러 서서 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들 주위에는 탄핵찬성 집회에 나온 수 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서 야유를 보내거나 탄핵 찬성구호를 외칩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시끄럽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100%가 윤대통령 탄핵을 찬성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독재일 수도 있겠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습니다. 윤대통령 같은 사람이 그렇지요. 민주주의 사회에 살려면 느긋하고 차분하게 성격을 바꿔야 합니다.



파란 풍선을 든 사람들이 국회대로 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풍선에 적힌 글들이 재미있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하라."

엄마 손을 잡고 오는 어린아이도 풍선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가방에 풍선을 단 여학생도 보입니다. 거기에도 이런 글이 보입니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친구들과 달려오는 어떤 어린 남자아이도 손에 풍선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도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글이 써져 있습니다. 윤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리기 전, 작년 11월 28일에 천주고 사제 1466명이 이렇게 호소를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이러한 호소를 비웃고 윤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정말로 어째서 사람이 그 모양이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곳은 연천 동두천 촛불단체, 강남 서초 촛불단체, 성신여대 촛불행동단 등등... 촛불단체가 모이는 곳입니다. 여의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각 단체별로 구역을 정한 모양입니다. 아까 국회대로 쪽에는 운수노조, 민주노총 등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이런 모임에 참석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민주화 투쟁을 해온 단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뿌리가 깊고 튼튼합니다. 12.3 친위쿠데타를 달리 막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튼튼한 민주주의 세력이 널리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검찰 정권의 부당한 탄압이 국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키웠습니다.


길거리 한쪽에 <노동자연대>(윤석열 탄핵 특별 호외)라는 신문이 뿌려져 있습니다. 2024년 12월 14일 자로 발행된 이 신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책에서 보았던 너무도 오래된 구호입니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만, 이렇게 광장에 나오니 볼 수 있는 구호입니다. 이 신문의 상면 타이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독자와 지지자들의 구독료와 후원으로 발행하는 좌파 주간 신문을 정기 구독/후원하자"


큰 제목만 급히 살펴보았습니다.

<윤석열 쿠데타 미수를 계기로 학생운동이 부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윤석열 퇴진 운동 편이 아니다>

<윤석열 쿠데타 미수 후폭풍의 전망과 과제>

<쿠데타 명분용 대북 국지전 도발 시도. 윤석열의 진짜 적은 북한보다 국내 노동운동과 좌파였다.>

<윤석열을 끝장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들>


또 다른 이유들을 상세히 읽어보니, 이러한 것들이 써져 있습니다.

"고물가, 고금리, 생계비 상승. 생계비 위기에 대한 저항 탄압. 전세 사기 피해자 외면. 부자 감세와 재정 긴축. 이태원 참사, 해병대원 죽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에 무관심."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윤석열 검찰 정권 들어선 뒤,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스스로 계엄령을 내려서 실패한 것이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지비를 대거 삭감한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시급한 과학기술 연구 예산을 모두 삭감한 것도 그렇고, 그렇게 해놓고도 모른 척, 자기가 그렇게 안 한 척한 것도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 파병을 기획하고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 공격하려 한 것도 무서운 일입니다. 잘되는 집안은 불이 나도 잘됩니다. 우리나라는 언젠가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국운이 승천할 조짐입니다. 아니 이미 승천하고 대통했습니다. 한류의 세계적 유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계엄령 사건도 승천하는 국운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에는 이런 것들도 있습니다.

<12월 12일 윤석열 담화의 새빨간 거짓말들>

<화물 운동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한반도 긴장 고조>

<여성 차별. 뒷걸음질 치는 기후 '대책'>

<법질서 내세운 권위주의. 친일 군사독재의 후예 국민의힘>


여의도 공원 쪽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커피와 음료수를 나누어줍니다. 핫팩도 상자 채로 쌓아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져가라고 합니다. 공원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국회에서 탄핵 표결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시가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공원 앞에는 대형스크린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늘 발행 일자로 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라는 홍보물도 받았습니다. 타이틀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화물노동자는 비상계엄을 2년 먼저 당했다. 안전운임제 쟁취투쟁과 윤석열 타도투쟁은 하나다." 그 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과 공정거래법까지 동원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탄압해 안전운임제를 폐지했다. '도로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화물노동자들의 절규를 짓밟고 안전운임제을 일몰시킨 윤석열 정권을, 노동자의 손으로 끝장낼 때다......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월평균 45시간 늘었고, 임금은 45%나 떨어졌다. 만연한 과속, 과적, 과로 속에 화물노동자 산재와 사망도 늘었다."


이 홍보물의 뒷 페이지에는 이런 글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조장해 온 혐오와 차별을 노동자의 손으로 청산하자."

"차별금지법 쟁취! 여성과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철폐! 장애인 차별철폐!"


A3 크기의 홍보물 중에는 다소 의아한 것도 있었습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이라는 단체에서 뿌린 홍보물인데 <탄핵과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 정권 타도!>라는 제목이 적혀있습니다. 작은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모순과 취약성을 드러냈다. 윤석열 탄핵-퇴진 투쟁은 과거 촛불 투쟁처럼 노동계급의 독자적 투쟁과 권력의 전망이 없다."


맨 마지막에 "박근혜도, 문재인도, 윤석열도... (미래의) 이재명도 자본가 정권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거 중국이나 소련 공산당 선전물일까? 아니면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일까, 아니면 일부러 윤석열 일당이 뭔가 2차 내란을 꾸미기 위한 낚시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뒷 페이지 상단에 적힌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라는 구호 아래에는 이런 글도 보입니다.


"지금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지만,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 남미에서 아시아까지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 노동계급이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감을 되찾고, 오랜 기간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었다."


이 글은 왠지 시대에 뒤처지고, 우리 사회의 현재 관심과는 많이 동떨어진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광장에는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 자신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를 찾아야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시민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 되며, 추첨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가난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도 없습니다."(주 2)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합니다. 그리고 어떤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누구의 추첨이나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능력이 있으면 공직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60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법 앞에 불평등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신분은 귀족이나 양반으로 한정됐고, 그중에서도 과거에 합격한 일부 유학자나 학연, 지연, 혈연이 좋은 사람만 출세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전 국민의 40% 정도는 인간으로 인정도 못 받는 노비였고, 여성들은 또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런 세상이 지긋지긋하여 삼일 운동이 일어난 뒤,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울 때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은 앞으로 세울 우리나라는 반드시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민주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군대를 동원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이유로 종북 세력 탓을 하고 부정선거 운운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막고, 자기 부인의 각종 범죄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국회의 특검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부하고 자신과 자기 가족은 예외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왕정을 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이 외칩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그런데 12월 3일 밤, 쿠데타는 실패했고 반역을 하였으니 쿠데타에 참가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거기에 가담한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마치 영화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일확천금을 꿈꾸고 역모를 꾀한 사람들입니다. 실패했으니 게임 규칙에 따라 처형을 당해야 됩니다. 성공했으면 떵떵거리며 온갖 권력을 손에 쥐고, 국회의원이나 공공기관의 사장자리를 꿰차고, 부정한 돈을 긁어모았겠지요.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과 전두환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불량한 성공을 부러워하며 거사를 일으켰으나, 실패했으니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전두광의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헌법을 어기고 쿠데타를 하면 성공해도 반역입니다. 쿠데타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역사의 심판을 무시한 말입니다. 내일 친위 쿠데타 주범 윤석열에게 준엄한 판결이 내려지길 기원합니다.



주 1) 변지민, 탄핵날 ‘3040 여성과 아이들’ 크게 늘어, 여의도 집회인원 전주보다 50% 증가, <뉴스타파>, 2024.12.19.

주 2) 정기문,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푸른역사, 2019, 47쪽.(투퀴디데스, 전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숲, 2011, 169쪽.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통령 탄핵날 국회 앞 광장 3 - '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