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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거리며 뛴 바다의 날 마라톤 10km(5회째)

by 임태홍

2025년 5월 24일. 토요일. 오늘은 제30회 바다의 날 마라톤 대회가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장소와 시간을 체크합니다. 장소는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 출발시간은 8시 30분입니다. 모이는 시간은 7시 30분, 준비운동과 경품행사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한국해양산업 총 연합회와 한국해운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에 저는 두 번째 참석합니다. 작년에 5km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배번호와 기념 티셔츠는 미리 집에서 받았습니다. 같이 보내온 마라톤 대회 특별판 신문을 보니 참가자 이름과 배번호가 빽빽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인쇄가 되어 있습니다. 참가자 명단을 살펴보니 단체로 참가한 팀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학 노동조합, 성결대학교 모임, 삼성금융그룹, 삼성강북병원, 수협중앙회, 신한회계법인, 서울시청마라톤동우회, 건국에이스러닝크루, 금호석유화학, 경기평택항만공사 등등. 특히 직장인들과 동호인 단체의 참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코스는 평화광장에서 출발하여 → 에너지제로하우스 → 구름다리 → 난지천공원 → 난지순환길 → 메타세쿼이아길 → 구름다리 → 난지천공원 (반환) → 구름다리 → 에너지제로하우스 → 평화광장으로 되돌아옵니다. 크게 보면 월드컵 공원에서 출발하여 하늘공원 쪽으로 건너가 노을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 시각은 6시. 오늘 아침 온도는 13도, 7시경에 비가 잠깐 올 수도 있고, 달리는 시간인 8시에서 10시 사이는 비가 내리지 않고, 14도에서 16도 예상, 11시는 17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점심 이후는 소나기 내릴 가능성이 40%입니다. 대체로 흐린 날씨라서 달리기에 아주 좋은, 시원하고 쾌적한 날입니다. 6시 30분경에 집을 나섭니다.

정릉 보국문역에서 우이신설선을 타고 보문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바꿔 타고 월드컵 경기장역으로 갑니다. 1시간쯤 걸렸습니다. 지하철을 타니 역시 같은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1번 출구로 나가 참가자들에 섞여서 평화의 광장을 찾아갑니다. 경기장 바로 앞 광장에 들어서니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키 큰 소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습니다. 수많은 파란색 텐트들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광장 안에는 페이스메이커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습니다. 혹시 비가 올까 봐 걱정입니다. 비가 내리면 저는 바로 철수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집에서 끓는 물을 옮기다가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하필이면 당시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무릎 위쪽, 즉 넓적다리 앞 쪽에 그대로 쏟아져 버렸습니다. 화상이 심해서 신경이 죽으면 통증도 없다는데 다행히 통증이 심했습니다. 약한 2도 화상, 혹은 심한 1도 화상 정도였습니다. 사고가 난 뒤, 바로 화장실로 가서 6시간 정도 흐르는 물에 상처 부위의 열기를 빼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월요일에 피부과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물집이 올라온 것을 터트려주고, 화상 전문 연고를 주면서 화상 전문 병원으로 가라고 했었습니다. 집 주변에는 그런 병원이 없고 멀리 찾아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간 여유가 없어서 일주일 정도 자가 치료를 했습니다. 물집이 올라오면 소독한 바늘로 물집을 터트려 진액을 빼내고 연고를 발라주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아물기는 했는데 상처부위의 피부가 아직 굳어지지 않아 흐물거립니다. 그동안 무릎을 거의 쓰지 못했고, 두세 군데 동전크기만큼 피부가 떨어져 나간 곳은 여전히 아팠기 때문에 마라톤 참가를 포기할까 생각하다 억지로 참가합니다.


마라톤 대회 안내문에는 '비가 내려도 대회는 개최된다'라고 하는데, 상처부위에 물기가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고 병원에서 주의를 받았습니다. 안내문에는 또 '전날 과음, 과로, 스트레스, 부족한 연습 등의 사유가 있는 달림이는 최대한 천천히 달림으로써 사고를 예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저는 사실 모두 해당됩니다. 과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회 전날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동안 마라톤 뛰기 전날에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10km 마라톤에 대한 심적인 부담이 없어져서 그런지 1 병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이삿짐을 싸느라 과로를 했고, 이러저러한 금전적인 일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걱정스러운 일들이 많아 뉴스를 보고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시간을 빼앗겼습니다. 거기다 4월과 5월은 헬스 운동도 걷기 운동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마라톤은 최대한 천천히 달려야겠습니다.

8시 30분에 하프팀이 출발하고, 9시가 거의 다 되어 10km 팀이 출발했습니다. 아치 오른쪽 연단에 대회 관계자들이 올라가 손을 흔들어 줍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 날씨. 비가 내렸는지 도로 곳곳에는 물기에 젖어 있습니다. 달리다가 곧바로 왼쪽으로 돌아 공원 안으로 들어갑니다.(주1) 잘 정비된 안쪽 길을 달려 나갑니다. 바닥은 맨질맨질한 판석이 깔려있습니다. 길이 넓으니 여유롭습니다. 좌우로는 나무들이 잘 자라 녹음이 우거져 있습니다. 그 아래 바닥에는 잔디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폭 10m쯤 되는 도로가 나옵니다. 양 옆으로 넓은 잔디밭. 마치 정원에서 뛰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아침 공기가 상쾌합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시며 달립니다. 참석하기를 잘했습니다. 이런 좋은 공기, 신선한 숲 속의 공기는 돈 주고도 못 사는 공기입니다.


공원 한쪽에 커다란 기념석이 나옵니다. 거기에 "다시 찾은 땅 난지도"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월드컵공원으로 이름 지어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립니다. 2002년 5월 1일 서울특별시장 고건" 그러니까 이곳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를 23년 전에 공원으로 재단장한 곳입니다. 매립지는 간혹 가스가 샌다고 하던데 달리면서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가스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무릎은 약간 굽혀진 채로 달립니다. 상처부위의 피부가 반바지에 거칠게 닫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이렇게 달리다 보니 달릴 만합니다. 약간 속도를 내봅니다. 1km 지점까지 왔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 달립니다. 벽돌이 촘촘하게 깔린 산책길. 빗물에 젖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구름다리가 나왔습니다. 노란색과 분홍색으로 울긋불긋하게 꽃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차량이 지나다니는 길. 구름다리를 지나 하늘 공원 쪽으로 넘어갑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이곳은 마치 개인 정원처럼 여러 가지 건물과 나무들로 꾸며져 있어 아기자기합니다. 폭이 6미터쯤 되는 좁은 길이 나타났습니다. 왼쪽은 찻길, 오른쪽은 자전거길입니다. 좌우로는 키 작은 관목과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합니다. 공기가 맑으니 호흡이 깊어집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한참을 달렸습니다. 곳곳에 안내요원들이 서 있습니다. 2km 간판이 나왔습니다. 도로는 적당히 젖어서 축축하고 숲 속의 공기는 시원하고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식수대가 나왔습니다. 물을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달립니다. 왼쪽으로 갔다 다시 오른쪽으로 도는데 작은 철문들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노을공원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 문을 지나 들어가니 10m쯤 되는 넓은 도로가 또 나타납니다. 좌우로는 키 낮은 관묵과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합니다. 이곳도 나무들 배치와 관리가 최고입니다. 숲이 무성한데 야생의 숲은 아닙니다. 잘 다듬어진 정원입니다. 달리다 보니 상처의 통증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무릎은 그런대로 견딜만합니다.


평평하고 굴곡이 거의 없는 길. 계속해서 직선으로 달립니다. 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정원을 달리다 보니 피부 화상이 저절로 나을 것 같습니다. 노을공원 끝 부분에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조금 달리다 보니, 갑자기 오른쪽에 아주 높은 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30층이 넘는 고층 건물들이 아주 많이 서 있는 그곳을 바라보면 달리는데 매우 신기합니다. 여기가 어디일까? 산속에 있는 대도시? 예전에 홍콩에 갔을 때, 빅토리아피크 전망대에 올라가서 높은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을 처음 본 것과 같은 감동입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쪽이라고 합니다.


도로는 조금씩 올라가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포장된 도로가 끊어지고 맨땅에 모래가 깔린 길로 바뀌었습니다. 모래길은 처음에는 좋았으나 달릴수록 불편합니다. 착지할 때 조금씩 미끌어 집니다. 심하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다리와 발목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달리기에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황토색 숲길은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그런데 거의 5km쯤 다 온 것 같은데 반환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드디어 5km 간판이 보이고 식수대가 나타났습니다. 물을 한잔 마시고 또 달립니다. 반환점이 없는 모양입니다. 노을공원을 나와서 이제는 하늘공원으로 돌아갑니다. 길은 계속 일직선입니다. 시인의 거리라는 곳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무릎이 이상합니다. 약간 굽은 상태에서 계속 달리다 보니 무릎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급히 멈춰 서서 천천히 걸어봅니다. 다시 달리니 괜찮아졌다가 다시 불편합니다. 6km 지점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무릎 안쪽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없던 뼈가 하나 더 생겼는지, 달릴 때마다 무릎 안쪽에서 찌르는 느낌입니다. 무릎뼈들이 잘못 뒤틀어졌을까? 다시 걸으면서 본래의 감각을 되찾아봅니다. 그런데 달리면 또 불편합니다. 걷다 달리다, 걷다 달리다 그렇게 버텨봅니다. 혹시 갑자기 무릎이 이상하게 된 것일까? 이제 메타세쿼이아길로 들어왔습니다. 오른쪽으로 30m 이상 되는 높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바닥은 여전히 황토색 흙길입니다. 다시 포장된 길이 나오고 직선으로 계속 달립니다. 길이 약간 경사지게 내려가는 비탈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주자들이 많습니다. 갈수록 많아집니다. 무릎은 여전히 불편해서 걷다 달리다, 걷다 달리다를 계속합니다. 또 식수대가 나타났습니다. 물을 마시고 바나나와 초코파이 한 조각씩을 집어 들고 먹으면서 걸어갑니다. 드디어 반환점이 나타났습니다. 8km 반환점입니다. 이곳은 하늘 공원 바로 위쪽에 있는 조그만 난지천 공원입니다.


반환점을 돌고 나니 이제부터는 올라가는 길입니다. 반환점은 돌았고 2km 남았으니 걸어서 갈까? 계속 무리해서 달리다가는 무릎을 못쓰게 되는 것을 아닐까?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니 조금 아픈 것을 참고 달려봅니다. 달리다 걷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같이 따라 걷습니다. 오르막이라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처음에 봤던 나무 육교, 구름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안내 요원이 방향을 알려줍니다. 좌로 우로, 우로 좌로 너무도 많이 방향을 바꿔서 방향감각을 상실했습니다. 달리다 보니 처음에 출발했던 평화의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가 반갑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광장 곳곳은 여전히 물기에 젖어 있습니다. 오른쪽 무릎이 심하게 아플 때는 잠시 걸으면서 엉킨 근육을 풀고 또 달립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평화의 광장도 크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리다 걷다, 달리다 걷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골인 아치를 발견했습니다. 아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골인을 했습니다.


메달과 기념품 그리고 식수를 받았습니다. 받은 물건을 펼쳐보니 음료수가 또 한병 들어 있고, 멸치가 한 봉지 들어있습니다. 작년에도 이 대회에 참가하고 멸치를 받았는데, 바다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쌀과자와 스펀지케이크 빵도 들어있습니다. 짐을 찾아서 광장 한쪽에 주저앉았습니다. 물을 마시고 빵을 허겁지겁 베어 먹다가 셀카 한 장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지금 그 사진을 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행복한 표정입니다.


이날 기록은 1시간 16분 5초. 전체 순위는 2,997 등이었습니다. 2,200명쯤 되는 남자들 중에서 2,067등 했습니다. 10km 주자들 기록을 보니 1시간 50분대가 거의 마지막 기록이고 저는 이보다 30분 정도 빨랐으니 절뚝거리면서도 잘 뛰었습니다. 다음에 또 달리려면 평소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겠습니다.


주1) 코스 설명은 다음 동영상을 참고했습니다. <신기방기 러닝> '제30회 바다의 날 마라톤 10KM', 2025. 5. 24.









































멸치 1 봉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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