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다 보면 온갖 동물이며 곤충을 만나게 됩니다. 시골도 요즘은 잘 지은 아파트며 빌라가 많으니 시골집 모두를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허술하거나 오래된 집들은 벌레들이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듭니다.
이틀 전 저녁쯤에 화장실 배관 위에 거미 한 마리가 거꾸로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걸 어쩌지? 파리채로 때려잡을까? 아니면 화장지를 통째로 손에 들고 눌러 죽일까? 그런데 며칠 전에 저 놈하고 비슷하게 생긴 거미가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때려잡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쉬고 있는 거미가 갑자기 측은해졌습니다.
크기는 거의 10cm에 육박하고 유독 다리가 깁니다. 모두 8개인데 좌우 대칭으로 그 모습이 멋집니다. 거꾸로 매달리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래쪽 다리는 두 개씩 모아 저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거미에게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순간입니다.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고, 너도 이 세상이 좋지?" 그리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이 놈은 이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죽은 게 아닐까? 죽었으면 저게 떨어질 텐데. 지구 중력 때문에. 저 8개의 발로 중력을 버티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게 틀림없지." 그리고 외출을 했다가 저녁에 돌아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저 모습 저 대로 꼼짝 않고 붙어 있습니다. 자세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말입니다. "어떻게 24시간을 저렇게 버티고 있을 수 있지?" 인간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이미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농발거미라고 합니다. 큰 것은 10cm가 넘으며 한국, 중국, 일본과 미국 등지에 산다고 합니다.(식물이나 동물, 곤충의 주요 서식지가 한중일 지역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고유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반도 위치가 중국과 일본의 교집합적인 지역이기도 하지만 목소리 큰 외국 학자들이 한반도 고유종을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미집을 치지 않고 직접 돌아다니며 먹이 사냥을 하는 거미입니다. 이 농발거미는 동굴이나 집안 내부에 사는데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독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특히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바퀴벌레의 천적이며 동작이 아주 빠르고 잘 뛰어다닌다고 합니다. 수명은 3년 정도이며 해충을 잡아먹는 중요 천적입니다.(<위키백과>) 하마터면 이 좋은 익충 거미를 죽일 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달쯤 전에는 손톱만 한 바퀴벌레 몇 마리가 동시에 보여서 이를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약을 뿌려야 하나 아니면 벌레 잡는 끈끈이를 사다 놓아야 할까? 그런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별로 안 보입니다. 아마도 이 농발거미가 모두 잡아먹었을 것 같습니다. 농발거미는 식성도 좋아서 하룻밤에 20여 마리의 바퀴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답니다.(<나무위키>)
이런 거미를 저는 생전 처음 봅니다. 구석에 저렇게 24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숨어 있으니 보이지 않았겠지요.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니 더욱더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죽인 한 마리가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괜히 죽였습니다. 이 거미를 우리 집 안의 블랙요원으로 임명합니다. 그래 이곳을 멋대로 드나드는 해충들을 모두 암살해서, 잡아 먹거라. 농발거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