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고양이 금순이 이야기
금순이는 시골 고양이입니다.
길 고양이였는데 먹이를 조금씩 주었더니 우리 집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와 삽니다. 하우스 안에 낡은 침대를 하나 놔두었는데 그 밑에서 새끼 고양이도 한 마리 데리고 삽니다. 새끼는 태어난 지 두 달 조금 넘었습니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 합니다. 가을에 태어나서 그런지 털이 수북이 자라 마치 털실로 만든 공 같습니다. 움직이는 모습이 몽글몽글하고 동골동골 몽골몽골 하여 몽골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지난주에 서울에 일이 있어 일주일 정도 집을 비웠는데 시골에 내려와 보니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 갔을까? 제가 있을 때는 사료를 조금씩 주니 하우스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없어지면 금순이도 야생으로 돌아가 먹이를 찾아다니며 도둑고양이로 그리고 길 고양이로 삽니다. 온 산을 뒤지며 사냥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여니 문 앞에 앉아있던 금순이가 화들짝 놀라며 달아납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쌀쌀한 날씨인데 문 앞에는 바람도 없고 햇살이 잘 들어와 거기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기 고양이 몽골이도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엄마를 쫓아서 같이 달아납니다. 몽골이는 제가 너무 무섭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내줍니다. 금순이도 따라 들어옵니다. 그동안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아기 고양이 몽골이는 하우스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습니다.
엄마 고양이는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순식간에 반쯤 먹었습니다. 몽골이도 배가 고팠는지 침대 밑에서 나와 엄마 곁에 달라붙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몽골이는 엄마를 살펴보다 다른 쪽으로 가서 저도 먹이 그릇에 머리를 들이밉니다. 그제야 엄마 고양이는 자리를 피해 줍니다.
몽골이는 사료 먹는 것이 서툽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먹이 통이 들썩들썩합니다. 몽골이 목이 짧으니 그릇의 바닥까지 입이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목으로 그릇을 누르고 들썩이면서 먹이를 먹습니다. 그렇게라도 먹으니 기특합니다. 마지막 한 알이 남았는데 보지 못했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또 침대 밑으로 들어가 숨습니다. 몽골이는 이직 모든 것이 무섭습니다.
하우스 바깥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하우스 안에서 몽골이가 쪼그만 소리로 야옹거립니다. 고양이 엄마는 하우스 바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 상태로 침대 아래를 보고 있습니다. 몽골이는 침대 아래에서 계속 야옹거립니다. 야옹거리는 소리가 조그마하지만 높은 고음입니다. 마치 참새소리 같기도 하고 쥐새끼 우는 소리같기도 합니다. 상황을 보니 엄마는 바깥에 나가자고 하는 것 같고 몽골이는 침대 밑에서 싫다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곧 나가려는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그제야 몽골이는 침대 밑에서 나와 바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몽골이가 바깥으로 나가려면 자기 키보다 2배나 더 높은 하우스 치마 비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 보니 몽골이는 바로 뛰어넘지 않고 치마비닐 앞에 있는 작은 상자에 먼저 올라가 그 상자에서 뛰어 넘어갑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엄마 뒤를 쫓아가는 몽골이를 먼발치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몽골이가 무엇을 봤는지 야옹야옹 찍찍거리면서 다시 급히 하우스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침대 밑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계속 찍찍거립니다. 아마도 무서우니 가기 싫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엄마 고양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서 뒤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 엄마라면, "너 자꾸 이럴래?" "이 겁쟁이야, 그럼 혼내줄 거야." "너 그러면 맛있는 거 안 사줘!" "으이구, 이 나이 먹어서 힘들게 하나 낳았더니... 저런 멍청한 놈." "이 힘든 세상에서 그럼, 도대체 너 어떻게 살래?" "봐라 이 놈아. 저 영감탱이가 평생 너 먹여 살릴 줄 아니?" 이럴 텐데 금순이는 조용히 아기 고양이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인자하고 자애스럽고 참을성 많으며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도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저런 모습이었을 텐데 말을 할 줄 알게 되고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니 나쁜 말도 생기고 나쁜 마음도 생긴 것 같습니다.
엄마 고양이 금순이는 아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갑니다. 아마도 먹을 것을 배불리 먹었으니 아기를 데리고 같이 물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기와 함께 사냥을 가는 길이었을까요? 독립을 시키려면 작은 새나 동물을 잡는 법, 먹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금순이가 어디로 가는지 몰래 따라가 봤습니다. 제가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자 금순이는 급히 장소를 옮깁니다. 금순이가 앉아있던 곳을 가보니 하우스가 내려다보입니다. 금순이는 먼발치에서 몽골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혹시 자기 새끼를 잡아 먹을까 걱정이 되었을 겁니다.
금순이가 앉아 있던 자리는 요즘 부쩍 참새들이 자주 내려오는 곳입니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참새 사냥도 가능합니다. 그곳에서 하우스를 내려다보니, 몽골이가 아직도 계속 침대 밑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때서야 엄마 고양이 금순이는 다른 쪽 언덕에서 야옹야옹 신호를 보냅니다. "나 여기 있다."는 말이겠지요.
저는 다시 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몽골이가 엄마 있는 곳을 알아내고서 부지런히 하우스 바깥으로 뛰어나갑니다. 겨울 햇살이 따뜻한 오후, 엄마 고양이가 뒤뚱거리는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외출을 합니다. 두 고양이가 숲 속으로 사라지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참새들이 우르르르 몰려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고양이들을 지켜보던 참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