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11월 25일, 입동이 지나고, 소설이 지난 지 3일 째 되는 날입니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서 영하 6도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운동삼아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공터에 배추와 무가 가득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밭에서 수확하면서 볼품없는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매년 이맘때쯤에는 흔히 보는 풍경입니다.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는데, 금년에는 김장을 배웠으니 다가가 상태를 살펴봅니다. 제가 관리하는 텃밭의 무와 배추는 김장에 쓰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포대를 가지고 와 담아서 옮겼습니다. 모두 4포대나 됩니다. 총각무(달랑무)가 많아서 2포대나 되고, 무 1포대, 그리고 배추가 1포대 정도입니다. 재료 준비도 없이 갑자기 하게 되어서 집에 있는 재로만으로 김장을 시도해 봅니다. 마늘과 생강, 그리고 새우젓은 없습니다. 사과나 배도 넣지 않습니다. 대파, 쪽파, 갓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고춧가루 2컵 정도, 굵은소금, 가자미 젓갈, 그리고 액젓입니다. 그야말로 연습용, 실험용 김장 갈무리입니다.
여기서 '김장 갈무리'라고 말한 것은 정리해서 보관하다는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실 '김장'이라는 말 안에 갈무리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장의 뜻은 밭에서 난 수확물을 겨우내 먹기 위해서 깍두기, 동치미, 김치로 만들어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김장을 '배추김치를 만들어 저장하다.'는 뜻으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 김치 재료는 배추 외에도 다양하게 많고 재료를 저장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이번 김장은 재료가 이것저것 많으니 여러 가지 김치를 만들고 다양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1. 김장 재료 손질하기 - 농약 제거 방법
2. 무청 시래기, 배추 우거지 만들기
3. 염장무(동치미) 만들기
4. 총각김치 만들기
5. 배추김치 만들기
1. 김장 재료 손질하기 - 농약 제거 방법
우선 마당에 커다란 대야를 내놓고 물을 가득 채워 배추와 무, 그리고 총각무를 씻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서 걱정이 되었으나 관정의 지하수 물이 신기하게도 따뜻합니다. 옛날에 우물이 있던 자리에 관정을 뚫어서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때도 겨울에 이렇게 따뜻해진 우물물로 김장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돌아가신 조상님들과 묘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제가 지금 김장을 하려고 이것저것 펼쳐놓은 자리에서, 아마도 조선 시대 때도, 고려시대 때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옛사람들은 이맘때쯤에 김장을 했을 것입니다.
손질할 재료가 너무 많아 급한 마음에 흙을 털어내고 한두 번만 씻었습니다. 그리고 정리해서 각 재료의 종류별로 분류하여 각기 다른 통에 담아 본격적인 갈무리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작업을 끝내고 나중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김장 재료들은 마을의 누군가가 판매를 위해서 키운 농산물입니다. 유기농으로 키운 것들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배추나 무를 팔려고 키울 경우 병충해 때문에 대개 농약을 많이 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품으로 내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벌레들이 많이 달려듭니다. 농부학교에서 유기농으로 배추와 무 등을 키워보니 배추는 특히 병충해 피해가 심했습니다. 그러니 농약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잘 씻었어야 하는데 이 점을 소홀히 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농약과 관련해서 이런 댓글이 보입니다.
"저는 농약을 쓰는 농부입니다. 유기농 하고 싶지요. 그런데 유기농으로 농사해서 팔면 먹는 소비자가 있을까요? 절대 안 먹습니다. 소비자가 안 먹으면 농부는 망합니다. 농부들이 농약을 뿌리고 싶은 분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농약 먹기를 자청해요. 그러니 농약을 많이 처야 잘 사가요. 소비자들이 벌레 먹은 것을 선호해야 진짜 유기농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벌레 먹은 것은 절대 안 사가요. '농약을 많이 많이 뿌려주세요.'라고 소비자는 원합니다."(주 1)
그래서 사람들이 배추를 씻을 때는 꼭 3번 이상 씻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농산물의 농약 문제입니다. 그래서 농약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히 알아봤습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실험한 결과가 있었습니다.(주2) 배추에서 많이 검출되는 농약으로 살충제 다이아지논과 살균제인 프로시미돈이 있답니다. 이들 농약은 먼저 자연상태에서 바람과 비, 그리고 햇빛에 의해서 일부 분해되고 없어집니다. 그리고 배추를 사 와서 잘 씻을 경우 약 60%까지 제거된답니다. 배추를 절이는 과정에서도 수분이 삼투압 현상으로 빠지면서 농약 일부가 제거됩니다. 절인 후에 세척하는 단계에서 흐르는 물에 3회 이상 씻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김장을 담은 후에는 발효단계에서도 유기산과 젖산균 등 효소나 미생물에 의해 농약이 분해되고, 제거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발효 후 1달쯤 지나면 농약의 80%에서 90%까지 없어진답니다. 혹시라도 또 걱정이 된다면, 익혀 먹으면 남은 농약을 더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농촌진흥청 유해물질과에서는 상추, 배추 등 채소의 잔류농약을 제거하고자 할 때는, 물을 받아서 2~3차례 씻는 것을 권합니다. 앞의 보건환경연구원의 설명과는 조금 다릅니다. 흐르는 물보다는 받아 놓은 물에 씻는 것이 시간도 적게 들고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물에 소금을 조금 첨가하면 제거효과가 더 좋다고 합니다.(주3)
김장에는 역시 맑고 깨끗한 물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잘 씻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으니 다음부터는 직접 유기농으로 키우지 않은 농산물을 갈무리할 때는 씻는 작업을 더 철저하게 해야겠습니다. 김장을 담아 오래 보관해 두면 발효과정에서 혹시라도 남아 있는 농약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2. 무청 시래기, 배추 우거지 만들기
무와 알타리 무를 손질하면서 무청을 많이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배추도 손질하면서 겉에 붙은 이파리 중 큰 것들은 떼어내서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으니 반 포대 정도 되었습니다. 그냥 말려도 되지만 부드러운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서 소금을 약간 넣은 물에 삶았습니다. 그리고 무청 줄기나 배추 잎을 몇 개씩 모아서 위쪽 끝부분을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 양이 반 포대나 되어 많은 것 같았는데 바깥 처마 밑에 걸어놓고 보니 많지 않습니다. 일부는 햇볕이 드는 곳에 걸어두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뒤에 살펴보니, 비닐로 된 끈으로 묶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시래기와 우거지가 마르면서 끈이 느슨해져 땅에 떨어지고 바람에 날렸습니다. 고무줄이나 집게를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 포대를 말렸는데 물기가 완전히 빠지니 그 양이 1/4 정도로 줄었습니다. 물에 불려서 된장국이나 찌개에 넣어서 먹어보니 여전히 질깁니다.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시래기 무침을 보면 아주 부드럽던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음에 그것을 보면 그 방법을 물어봐야겠습니다. (어떤 유튜브를 보니 소금을 넣지 않는 물에 오랫동안 푹 끓이면 부드럽게 된다고 합니다. 주4)
3. 염장무(동치미) 만들기
군대 있을 때 겨울에 김장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배추김치를 만들고 난 뒤, 남은 무와 소금으로 염장무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시킨대로 무 손질만 했으니 상세한 과정은 모릅니다. 우선 무를 씻어 다듬고 항아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소금물을 짭짤하게 만들어 항아리에 부어 넣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재료도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관해 보면 어떨까 하고 기대반 걱정반에 항아리를 집 한쪽 추운 곳에 두었습니다.
한 달쯤 뒤에 항아리 뚜껑을 열고 확인해 보니 물 위에 살짝 골마지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았고 따뜻한 날이 많았기 때문인지 벌써 발효가 많이 진행되어 익기 시작했습니다. 무 가운데 몇 개는 물 위에 떠있습니다. 이것들 표면도 골마지가 많이 끼었습니다. 좀 더 짜게 했어야 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청도 무에 달린 채로 넣었는데 다음에는 무만 넣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발효 진행이 더 천천히 진행될 것 같습니다.
무 가운데는 깨끗하게 씻지 않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부분적으로 물렁거려 부패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를 완전히 깨끗하게 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한 틈도 보이지 않도록 깔끔하게 손질을 해야 되는 모양입니다. 김장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세균들과의 전쟁입니다. 좋은 세균은 보호하고 나쁜 세균은 박멸해야합니다. 소금, 마늘 등 김장 재료와 차가운 날씨가 그 일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깨끗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환경이 우리 몸에 유익한 세균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번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결국 그것이 맛과 연결되는 것이겠지요.
국물 맛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동치미 맛이 납니다. 무와 소금 그리고 물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약간 시큼한 맛이 난다는 것은 분명히 발효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소금 덕분에 나쁜 세균은 죽고 좋은 효소와 세균이 이런 맛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보통 동치미를 만들 때는 고추, 파, 마늘, 생강 그리고 찹쌀 풀이나 사과, 배, 청갓 등을 넣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도 발효는 일어나고 유산균, 젖산 등이 왕성하게 증식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치미는 백김치와 함께 대표적인 김치입니다. 배추김치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배추는 삼국시대 말엽쯤에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무는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나라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무를 소금물에 넣기만 하면 동치미가 되니 동치미 역사는 오래되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김치의 원형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동치미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보면서, 추가되는 재료, 예를 들면 고추, 파, 마늘, 생강, 찹쌀 풀, 사과, 배, 청갓 등이 각각 어떤 효과를 내는지 잘 파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김장 전문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4. 총각김치 만들기
뜻하지 않게 총각무를 많이 확보해서 총각김치를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총각무를 다듬었습니다. 총각무는 뿌리 부분이 갈라져 손질이 까다롭고 귀찮습니다. 그래도 꼼꼼히 흙을 씻어내고 칼과 수세미를 사용하여 무 사이사이의 검은 부분을 없애줍니다. 깨끗하게 손질하고 무에 최대한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도 썩었거나 물러진 부분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과감하게 잘라냅니다. 무 줄기는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소금으로 충분히 절인 뒤, 양념에 버무립니다. 양념은 밥 한 공기, 고춧가루 조금, 멸치 액젓 그리고 가자미 젓갈을 추가하여 한꺼번에 믹서기로 곱게 갈았습니다. 마늘과 생강 등 다른 재료는 없으니 최소한의 것 만으로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아리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한 달쯤 뒤에 항아리를 열어 보았습니다. 역시 상온에 보관했기 때문에 맨 위에 있는 것들은 부분적으로 골마지가 끼어 있습니다. 맛을 보니 조금 짜지만 총각김치 맛이 납니다. 사과, 배나 양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맛은 조금뿐입니다. 그래도 담백한 맛이 있습니다.
총각무는 절일 때는 2시간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살짝만 절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물에 2번 정도 씻어서 양념에 버무립니다. 그런데 저는 하룻밤을 절였습니다. 거기다 액젓에 젓갈을 많이 넣어서 아직은 짠맛이 강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무가 익으면서 짠맛이 약해지겠지요. 마늘과 생강은 잡균의 번식을 막고 살균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그것들을 넣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아직까지는 무난합니다.
5. 배추김치 만들기
배추를 손질합니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속이 노란 것도 있고 파란 것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사 오면 배추 크기가 균등하지만 남의 밭에서 수확하고 버린 것들을 주워왔으니 제각각입니다. 소금에 절여서 하룻밤 묵힙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일어나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배추김치 양념도 총각김치와 같게 합니다. 밥 한 공기, 무 조금, 액젓, 젓갈, 그리고 고춧가루 약간을 믹서기에 넣고 한꺼번에 곱게 감니다. 마늘과 생강 그리고 다른 것들은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양념을 배추와 함께 버무렸습니다. 고춧가루가 충분하지 않으니 거의 백김치에 가깝습니다. 이 역시 항아리에 차곡차곡 쟁여서 집 뒤쪽 언덕에 갖다 놓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날씨가 따뜻해져서 항아리 위쪽에 있는 배추김치는 벌써 골마지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김장비닐에 넣어서 항아리 안에 보관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잘못한 것 같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골마지 낀 김치만 들어내고 김장비닐을 김치 위에 덮어두었습니다.
김치 맛을 보니 아직 짠맛이 강합니다. 배추를 절인 후 소금기를 완전히 빼지 않았고, 젓갈을 너무 많이 넣은 모양입니다. 젓갈 대신 날 생선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갈치나 조기, 혹은 가자미를 사다가 배추김치 중간중간에 끼워 넣어야겠습니다.
김장 갈무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겨울에 시골에 올 때는 반찬을 싸 오거나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들고 왔는데 금년에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또 한꺼번에 많은 채소를 갈무리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김장에 대한 부담과 공포심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김장이란 채소를 보관하는 것입니다. 소금에 절여서 보관하기만 하면 발효는 저절로 진행됩니다. 추운 날씨가 김치를 맛있게 만듭니다. 말하자면 소금 하나만으로도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보조일 뿐입니다.
주1) <안동MBC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 흙>, https://www.youtube.com/watch?v=iFHawBHIL5k 가운데 user-wi5sc4wj2f 님의 댓글
주2) 조미현, 「김창철인데 배추농약 괜찮을까?」. <하이서울>,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187431), 2011.10.31
주3) 김선희, 「상추, 배추 등 엽채소 조리법과 씻는 법만 바꿔도 농약걱정 없다.」, <농수축산신문>, https://www.af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586, 2008.5.28
주4) 함께해요 맛나요리, <무청 시래기 삶는 법>, https://www.youtube.com/watch?v=XFUPy6y1-Zs, 202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