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11월 24일, 중부지방에서 김장하기에는 조금 늦은 때입니다. 지난 22일이 소설이었고 그 전인 7일이 입동이었습니다. 김장은 입동 전후 5일 내외에 하는 것이 김치 맛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늦어지고 있으나 그래도 요즘은 김장하기에 조금 늦은 때입니다. 오늘은 아주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서울은 최저 2도, 중부지방은 최저 6도까지 떨어진답니다.
시골집에 오면서 옹기장수를 만났습니다. 도로 한쪽에 '폐업'이라는 나무 간판을 내걸고 옹기를 가득 싫은 트럭을 대놓았습니다. 옛날 옹기장수는 나무 지게에 항아리를 10여 개씩 싣고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조그만 1톤 트럭에 옹기를 가득 싣고 다닌 답니다. 차량 여기저기에 '폐업'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 놨는데, 정말 폐업 같지는 않지만 참으로 호소력이 있습니다.
항아리가 집에 몇 개 있지만 싸게 살 수 있을 때 사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항아리는 도시에서는 어울리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만, 시골에서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립니다. 텃밭 한쪽에 놔두어도 되고 집 뒤 언덕에 아무렇게 놔두어도 잘 어울리고 묘한 풍치가 있습니다. 햇빛이나 비, 눈에도 끄떡없고 쥐와 고양이가 나돌아 다녀도 먹는 물건을 보관하기에 든든하고, 안심이 됩니다.
'폐업' 간판까지 붙여 놨으니 싸게 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가격을 물었습니다. 10리터 항아리 2개, 20리터 항아리 2개, 그리고 30리터 항아리도 2개 추가하여 모두 20만 원에 준다고 합니다. 시중에서 파는 가격의 반쯤 되는 가격입니다. 배달까지 해주기로 했으니 손해보지 않는 거래입니다. 항아리가 가득 실린 트럭 조수석에 저도 직접 타고 우리 집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차에 올라타니, 운전석 옆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게 휴대용 가스버너와 작은 냄비가 있습니다. 이렇게 밥을 해 먹으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이 양반은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예산까지 내려와 옹기를 팔고 있습니다.
집에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월 40만 원 정도 노령 연금을 받는데, 이 돈이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분 나이는 70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김장이야기도 했습니다. 요즘 자기가 사는 곳 주변 밭에 김장거리 수확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끔 자전거를 타고 인근 밭을 돌아다니며 수확이 끝나고 남은 푸성귀를 수집해 그것으로 김치를 해 먹는 답니다. 저도 지난주에 김포 텃밭에서 수확하면서 배추와 무를 많이 남겼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가져오지 못했는데 주변에 사는 누가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대학 다닐 때 아는 선배도 학교 주변 밭에 떨어진 배추 잎사귀를 모아서 반찬을 해 먹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배추 수확철에 밭에 나가 푸성귀를 모아서 김장을 담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김장을 할 줄 알았던 그 선배는 나중에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생활력이 강한, 대단한 선배입니다.
농부학교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 김치가 맛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배추도 이쁘게 잘 자란 배추보다 어설프게 자란 배추나 이파리가 볼품없이 벌어진 배추가 김장을 해놓으면 맛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잎이 가득 찬 결구배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전에는 푸성귀 배추였다고 합니다.
경상도 지역의 전통 김장 담그기를 소개해주신 김장 선생님도 돈이 많이 드는 김장보다는 소박한 김장 담그기를 권했습니다. 굳이 단맛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사과와 배를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은은한 단맛은 배추 자체에서도 나오고, 같이 넣는 무나 양파, 그리고 찹쌀풀에서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칫소를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 배추 안에 일일이 집어넣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배추를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에 김칫소를 배추 바깥에 조금 끼워 넣은 정도에 그치면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냉장고를 쓰지 않는 김치보관법까지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건물 바깥이나 추운 베란다에 겨울 내내 보관해 두면 김치 맛이 차가운 날씨를 만나 더 깊어지고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충청도 지역의 전통 김치도 보면 '소박하고 담백한 맛을 추구하여, 젓갈을 많이 쓰지 않고 소금을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양념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은은하고 담박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주1) 청주 소로리 마을의 어떤 집에서는 배추 푸성귀를 소금에 약간 절여서 무를 크게 썬 섞박지를 사이사이에 넣고 고추씨앗만 넣어서 보관하여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소박한 김치도 다음 해 봄까지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고 잘 보관하면 아주 맛있는 김치가 된다고 합니다.(주2) 요즘은 너무 풍요로워서 병입니다. 최고의 김치는 소금간이 은은한 백김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금으로 절이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김치말입니다.
주 1) 정윤화,「조선초기부터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충청북도 가지김치」, <지역N문화>(https://ncms.nculture.org/food/story/705), 2023.12.28
주 2) 자구TV, [배추짠지 & 김장묻기], https://www.youtube.com/watch?v=qFqoweikVLc, 202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