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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Dec 15. 2023

봄날, 교육장 텃밭 가는 길

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도시농부학교 교육장 텃밭을 갈 때 저는 항상 여행하듯이 갑니다.

외지인이고 금년에 처음 경험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김포 풍무역이 생긴 지는 4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역 앞의 아파트들이 건축된 지는 7년 정도, 그리고 그 일대 상가도 그즈음에 개발되었다고 하니 김포에 사는 사람들도 아마 이곳은 생소할 것 같습니다.  텃밭은 풍무역 2번 출구를 나와서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태리 쪽입니다.


텃밭 가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가 적지 않아 여기에 소개해봅니다. 2023년 5월 6일의 이야기입니다.

풍무역 2번 출구를 나와서 20m쯤 곧장 가다 좌측으로 돌아 100m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조그만 사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돌면 유현로 238번 길이 나옵니다. 사거리 파리바케트 앞길입니다.  3차선 도로가 약 300m 이어진 이곳은 새로 개발된 신도시 상가타운답게 부동산 가게가 많고 커피숍도 많으며 곳곳에 편의점과 음식점이 있는 곳입니다.      


양쪽으로 상가가 늘어선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마주치는 것은 넓은 들판입니다. 농촌 풍경을 마주친 뒤, 오던 길을 되돌아보면 비로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가서 편의점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사들고 돌아옵니다.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길을 건넙니다. 길을 건너면서 오른쪽을 보면 또 전혀 다른 경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30층 가깝게 치솟은 거대한 아파트 촌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나즈막한 상가 건물들을 보고 걷다가 이곳에 와서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를 보면 멋지다는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직선으로 뻗어 올라간 수십여 동의 높은 아파트는 도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아파트들이 모여서 마치 피라미드처럼, 가운데 부분은 높이 솟아 있고 양쪽은 낮습니다. 왼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수직적인 도시와 수평적인 시골이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높이 솟은 아파트를 쳐다보며 길을 가다 하천이 나오는 곳에서 왼쪽으로 돕니다. 이 하천은 김포대수로입니다. 물이 가득차있습니다. 또 걷다 보면 왼쪽으로 텃밭이 이어집니다. 이곳 텃밭은 여러 사람들에게 임대해 주는 곳 같습니다. 정리가 매우 잘 되어 있고, 두둑에는 각종 채소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양파, 감자, 심지어는 고구마까지, 농부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미리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면 커다랗게 자란 명자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산당화라고도 불리는 명자나무는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관목형태로 자라서 키가 1m 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크게 자라도 사람 키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 명자나무는 높이가 약 4m 입니다. 둘레가 3m 정도로 아주 큽니다. 짙은 붉은색으로 핀 명자꽃이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드러나 보여서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 크기에 압도되어,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나무입니다.     


좀 더 가면 또 다른 명자나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밭가운데에 주인이 y자 형태의 굵은 말뚝을 하나 꼽아 놓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막대기 위에 빨간 명자꽃이 두 송이 피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였습니다. 앞서 본 명자나무와는 전혀 달리, 모든 가지를 잘라버리고 꽃 2 송이만 남겨놓은 명자나무입니다. 나뭇잎도 가지도 다 잘라버리니 꽃은 매우 크게 피었습니다. 단순함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다시 천천히 길을 걷습니다. 오른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아파트가 높이 서 있고 왼쪽으로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하천을 따라 좁은 길을 걷다 보면 하천길 곳곳에 심어져 있는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물이 찰랑거립니다. 하천 너머에 깨끗하게 정돈된 아파트 건물이 보입니다. 천천히 보면 물속에 잘 정리된 도시의 아파트가 보이고 그 아파트가 물 바깥으로 나와서 하늘을 지를 듯이 높이 솟았습니다. 마음이 급할 때는 보이지 않는 풍경입니다.


하천에 비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며 걷다 보면 건널목이 나오고 쭉 뻗은 4차선 도로와 마주칩니다. 이 도로는 양쪽 인도가 아주 넓습니다.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도블록도 아주 깨끗합니다. 인도에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아 매우 한적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도로는 아주 특이하게 평화로운 곳입니다. 이곳에서 차들은 느긋하게 다닙니다. 신호등을 보고 도로를 건넙니다.      


왼쪽으로 돌아서서 걷습니다. 약 300m 정도 되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많은 텃밭들이 보입니다. 이곳은 앞서 본 텃밭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빈 공터에 아무나 마음대로 이용하는 텃밭입니다. 그러나 심는 작물들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약초인듯한 작물도 있고 돼지감자도 보이고, 완두콩 싹도 보입니다. 도로 쪽으로 바짝 붙여서 옥수수를 줄지어 심어 놓은 곳도 있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어본 사람들의 텃밭입니다.

    

텃밭을 구경하면서 한 참을 걷다 보면 또 사거리 건널목을 만납니다. 이곳 분위기는 방금 전에 걷던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엄청난 속도로 쉴틈없이 달려오는 차들로 위압감을 느낍니다. 8차선 정도 되는 넓은 길에 어디서 그 많은 차량이 오는지, 수많은 차량들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방금 지나온 길이 평화롭고 한적한 국도라면 이곳은 고속도로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이 이런 분위기일까요?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졌습니다. 급히 쫓기듯이 건너갑니다. 


오른쪽으로 돌아 도로 갓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량들이 혹시라도 날아올까 봐 몸을 숙여서 뛰어갑니다. 100m 정도 뛰다가 왼쪽으로 조그만 농로가 나오면 급히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도로입니다. 자가용이 겨우 다닐만한 이 농로길을 걷다 보면 다시 마음이 평온해지고 여유로워집니다. 양쪽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걷다 중간쯤에 노랑꽃이 피어있는 개나리를 만납니다. 다른 개나리 꽃은 다 졌는데 이 개나리는 꽃이 아직 피어있습니다. 신기해서 다가가 보니 노란 것은 이파리입니다. 황금개나리입니다.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가지 수가 적지만 몇 년이 지나면 매우 많아지겠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덧 교육장 텃밭에 도착합니다. 풍무역에서 텃밭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입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시간이 여유롭고 마음이 편하면 아름다운 볼거리가 한없이 많은 길입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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