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 속 농서의 가치>

2023년 농부학교 수업일지

by 임태홍

12월 13일, 겨울농사학교 다섯 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화상으로 강의를 듣는 일이 이제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생각이 강해서 어수선하고 산만했었으나 이제는 제법 잘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의 놀라운 발전을 함께 느끼는 수업입니다. 줌이라는 화상 서비스를 통해서 전국 곳곳에서 3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인터넷에 접속하여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촌스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강의 제목은 <임원경제지 속의 농서의 가치>입니다. 강사는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님입니다. 2003년부터 『임원경제지』를 번역하고 있는 이 연구소는 그동안 이 책의 16지 대부분을 번역하였고 지금은 2지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 공으로 금년에 문화재청의 문화유공자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대단한 일입니다.


강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농서를 소개하는 부분이고 뒷부분은 저자 서유구와 『임원경제지』내용 소개입니다. 수업시간에 참고로 받은 자료는 119쪽에 이르며 방대합니다. 여기서는 그 일부만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먼저 우리나라의 전통 지식인들이 농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학박물관에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 44명을 선정하였는데 그중에 농업을 주제로 한 저서를 가진 사람은 박세당, 홍만선, 박지원, 최한기, 서유구뿐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서유구(1764-1845)는 정약용(1762-1836)과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저서를 냈던 정약용도 농서는 없습니다. 실학자에 한정하더라도 매우 적습니다. 한국 실학학회가 선정한 실학자 33인 중에서 농서를 집필한 학자는 박세당, 박지원, 최한기가 있고 서유구의 가족들, 즉 할아버지 서명응, 아버지 서호수, 그리고 형수인 빙허각 이씨가 있을 뿐입니다. 빙허각 이씨는 한글로 음식 관련 서적을 발표했는데 영향력이 아주 컸습니다.


중국의 역대 농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범승지서 : 3천 자 분량으로 후한시대 BC 30년경 범승지의 저술

2. 제민요술 : 11만 자 분량으로 북위 533년경 가사협의 저술. 국내에 번역본이 출판됨

3. 사시찬요 : 약 4만 자 분량으로 당나라 시대 한악의 저술

4. 경직도 : 남송시대 누숙의 저술. 그림이 포함됨

5. 농서 : 남송시대 진부의 저술

6. 농상집요 : 6만 자 분량으로 원나라 시기 사농시의 저술

7. 왕정농서 : 13만 6천 자 분량으로 원나라 시기 왕정의 저술

8. 농정전서 : 70만 자 분량으로 명나라 서광계의 저술. 전통시대 농서의 집대성

9. 수시통고 : 청나라 시기 악이태 등이 저술


선생님은 특히 이들 저서의 분량에 주목했습니다. 『범승지서는 한자수가 3천 자인데 농정전서는 70만 자에 이릅니다. 한자 70만 자일 경우 한국어로 번역하면 적게 잡아 3배인 210만 자 정도 됩니다. 단행본 1권을 10만 자로 계산하면 약 21권이나 되는 분량입니다. 이『농정전서』는 우리나라 농서 간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농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농사직설 : 3,186자로 정초 등이 1429년 저술. 국보로 우리나라 최초 농서로 내용은 빈약함

2. 금양잡록 : 강희맹이 1492년 저술

3. 농가집성 : 공주 목사 신속이 1655년 저술

4. 색경 : 박세당이 1676년 저술. 중국 농서를 많이 참조하여 독창성이 떨어짐

5. 산림경제 : 홍만선 저술. 중국책 인용이 많고, 농사 관련 기록이 많음. 서유구에 많은 영향

6. 증보산림경제 : 유중림이 1766년 저술. 농사 관련 기록이 많음. 5권으로 총 382쪽 분량

7. 본사(本史) : 서명응, 서유구 저술. '본서'란 근본에 관한 책이라는 뜻. 12권으로 구성

8. 해동농서 : 서유구의 부친 서호수가 1795년경 저술. 우리나라 농서 최초로 그림 수록

9. 과농소초 : 박지원 저술. 중국『농정전서』를 많이 인용, 자기 생각도 많이 제시. 서유구에 영향

10. 행포지 : 서유구가 1825년 저술. 300쪽 분량 5권으로 구성

11. 임원경제지 : 서유구가 1842년 저술. 40권으로 총 2,996쪽, 약 57만 자임. 조선 농서의 집대성


선생님의 지적에 따르면, 조선시대 400년 기간에 우리나라 농서는 중국에서 1700년간 지속해서 발전해 온 농서 분량 수준으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내용도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임원경제지』의 성과를 말합니다. 이 책은 특히 중국의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조선의 사정에 맞게 저술했는데, 이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책에서 농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은 본리지, 관휴지, 예원지, 만학지, 전공지, 위선지, 전어지 등 7종입니다.


서유구는 '농사는 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교철학을 논하는 경학에 자신이 덧붙일 것은 없다고 보고 할아버지 때부터 지속해 온 농서 집필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임원경제지』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남의 것을 베끼기만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추가하고 새 농법을 제시한 점이라고 합니다. 그의 책에는 '실학'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으나 '이용후생(利用厚生, 도구를 편리하게 이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함)'이라는 단어는 자주 나온다고 합니다.


1825년 62세의 나이 때 지은『행포지』첫머리에서 서유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천하의 사물 가운데 고금에 걸쳐 우주를 통틀어 하루라도 빠트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어떤 것이 으뜸인가? 곡식이다. 지금 천하의 일가운데 고금에 걸쳐 우주를 통틀어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일을 찾는 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일이다."


서유구는 조선에서 고위 관리로 규장각에서 일했으며 정삼품인 승지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즉 1790년에서 1806년까지 관직생활을 했으며 1806년부터 18년간 귀향하여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행포지』에서 그는 자신이 농사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사의 방법도 모르고 서툴고 게으른 점에 대해서 탄식하였으며, 스스로 밭을 갈고, 써레질하고, 김매고, 거름을 주고 갈무리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는 1823년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다시 관직에 나갔으나, 1825년 경에 부친이 유배된 뒤로 완전히 귀향하여 농사일을 하면서 농학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서유구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글을 썼습니다. 물론 한문으로 썼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으나 최대한 쉽게 이해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한문을 아는 선비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직접 농사를 짓고 실험을 하여 조선에도 적용이 가능한 농법을 찾아 자신의 책에 그것을 담았습니다. 이 점이 서유구의 저술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임원경제지』는 모두 16개의 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지의 이름과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본리지 : 농사 일반, 곡식농사, 농지 가꾸기, 파종과 수확 저장, 농가 달력표, 그림으로 보는 농사 연장 등

2. 관휴지 : 채소, 풀열매, 약초 농사

3. 예원지 : 화훼 농사, 꽃이름 고찰, 접붙이기, 꽃 설명

4. 만학지 : 과일, 나무, 풀열매 농사

5. 전공지 : 직물 재료 생산 및 직물 만들기

6. 위선지 : 기상, 천문을 보고 풍흉 예측하기

7. 전어지 : 가축 사육, 양봉, 양어, 사냥, 고기잡이

8. 정조지 : 요리하기

9. 섬용지 : 집 짓기, 일용품 만들기

10. 보양지 : 건강법

11. 인제지 : 치료법

12. 향례지 : 관홍 상제 및 마을 공동체 윤리

13. 유에지 : 교양 지식

14. 이운지 : 고상한 문화, 예술 생활, 세시풍속

15. 상택지 : 좋은 집터 잡기

16. 예규지 : 상업 활동, 돈 버는 법


『임원경제지』는 총 11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책은 위선지, 인제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임원경제 연구소에서 번역,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서유구의 책은 개인이 저술한 것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조선시대에는 출판이 되지 못했습니다. 필사본으로 전해온 것입니다. 임원경제지 번역팀이 처음으로 출판을 하였다고 하니 대단한 일입니다.


마지막에 결론으로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가 다가 오므로 농사일 관련 지식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요즘 환경 문제로 인류 멸망까지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으로 지구환경은 갈수록 악화되어 이 세상은 정말 지옥 같은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옛 사람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새로운 농업을 모색하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의 농서를 총 집대성한 『임원경제지』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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