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태홍 Jan 15. 2024

새우젓 익어가는 광천의 겨울 풍경

2023년 12월 27일,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충청남도로 귀촌을 했지만 이곳 사정은 전혀 모릅니다. 지리도 어둡습니다. 언젠가 장항선을 타고 서울을 가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광천에서 드디어 땅을 팔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광천이 어디죠?" 하고 물으니, "아니 광천을 모르세요?" 그럽니다. 새우젓과 광천김으로 유명하고 충남에서는 예전에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자기는 아파트 사업으로 큰돈을 모았는데 광천읍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가 이제는 정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으로 된 반지며, 시계, 목걸이 등을 보여주고 아직도 한 달 수입이 천만 원 넘는다고 자기소개를 합니다. 옛날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다른가 봅니다. 아무래도 평화로운 시대라 그렇겠지요. 저는 그저 잔뜩 주눅이 들어 신기한 눈초리로 그분의 영웅담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영웅담입니다.


오늘은 도대체 광천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시간을 냈습니다. 장항선을 타고 광천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광천역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니 젓갈 익는 냄새가 가득 풍겨옵니다.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서 걷는데 조그만 공원에 커다란 비석이 보입니다. 시가 쓰여있는 비석입니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서기 2016년 여름 

내 고향 광천을 생각하며 노래 부르면서 쓰다. 장사익.


장사익 님의 노래 찔레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 고향이 광천이었다니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장사익은 어렸을 때 마을 뒷산에 올라가 웅변연습을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주1) 그 마을이 삼봉마을이며 그 뒷산은 광천읍의 남쪽에서 읍내 사람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야트막하면서도 느긋하게 경사진 모습이 매우 독특하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합니다. 여늬 마을에나 있음 직한 뒷동산의 모습입니다.


광천읍은 광천역과 매우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역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오면 바로 몇 발자국 안 가서 읍내의 중심 시장으로 들어섭니다. 광천 전통시장과 토굴새우젓 시장이 200m 안에 있고 남쪽으로 광천 버스터미널이 300m 거리에 있습니다. 인구는 약 8천 명인데 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주요 시설과 건물들이 모두 모여있습니다. 그러니 걸어서 산보하기도 좋고 이곳저곳 구경하고 역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좋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합니다. 산보하면서 느낀 것은 여기저기 학교가 많다는 점입니다. 광천중학교, 한국 K-POP고등학교, 충남 드론 항공고등학교, 광천 초등학교, 삼육고등학교 그리고 폐교된 초등학교도 곳곳에 많이 보입니다. 이 조그만 읍에 왜 이렇게 학교들이 많을까요? 광천이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교육의 중심지였던 모양입니다. 상점들도 많고 시장 규모도 보통의 읍과는 다릅니다. 아무래도 새우젓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겠지요.


한때 광천은 충남에서 가장 큰 5일장이 열리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때는 금광이 개발되어 채굴된 적도 있고 광천역에서 1km 거리에 있던 옹암포는 인근 섬들의 관문이었고 장날에는 서해바다에서 150여 척의 배들이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해산물이 들어오고 육지에서는 생필품이 제공되는 거점이었던 것이지요.(주2)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옹암포가 없어지고 그 많던 배들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변 섬들은 다리와 도로로 연결되고 배들도 이곳까지 힘들게 들어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시장을 나와서 광천역으로 돌아와 역 앞의 길을 쭉 따라가 봤습니다. 광천로 329번 길입니다. 도로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한적합니다. 길거리에는 자가용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지만 움직이는 차도 거의 없기 때문에 걷기에 아주 좋습니다. 공기도 좋고 조용합니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방학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골목길에서 걸어 나오는 외국인 한 사람을 봤습니다. 작은 키에 구레나룻과 콧수염을 길렀습니다. 아마도 인도나 파키스탄 사람 같습니다. 옷차림을 보니 여행객은 아니고 이곳에 사는 사람 같습니다. 거리의 풍경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한참 걸어가니 로터리가 나오고 롯데리아도 보입니다. 시골 읍내에서는 보기 힘든 햄버거 판매점입니다. 학생들이 많으니 이런 가게도 있는 모양입니다. 로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걷습니다. 광천천에 있는 광천교로 향하는 길입니다. 양쪽으로 상점이 많은데 드나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가끔 보이는 건물 중에는 아주 오래전에 세워진 역사 유적지 같은 건물도 있습니다. 정원 한쪽에는 긴 역사를 자랑하듯 커다란 나무가 겨울 하늘 높이 치솟아 있습니다. 


또 어떤 집은 주인이 살지 않는 듯 담벼락 한 군데가 무너져 있습니다. 닫힌 미닫이 문 너머로 잘 정리된 세간살이가 보입니다. 주인이 없으니 고양이 한 마리가 커다란 마당을 독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합니다.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광천교를 건넜습니다. 광천(廣川)의 뜻은 '넓은 내'입니다. 역시 이름같이 아주 넓은 광천천입니다.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천천히 걸어서 하천 한쪽에 만들어놓은 산책길로 들어섭니다. 산보하기 좋도록 하천 옆에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길 한쪽으로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습니다. 멀리 배부른 다리 삼봉교가 보입니다. 다시 도로로 올라와 남쪽을 바라보니 장사익 님이 살았던 삼봉마을이 앞에 보입니다. 뒷산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올라가면 광천읍이 한눈에 보일 것 같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걸어 나오는데 장의사 간판이 눈에 띕니다. '수의 바느질'이라는 간판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등이 굽은 고령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른 상가의 간판들은 관리를 안 해서 글자가 지워지고 낡은 경우가 많았는데 장의사 간판은 아주 깨끗합니다. 최근에 달았겠지요. 요즘 시골은 어느 읍내나 똑같습니다. 아이들 관련 간편은 내려지고 노인들 관련 사업은 번창 중입니다. 초등학교에는 애들이 보이지 않고 복지관에는 어른들이 가득합니다. 인터넷을 보니 어떤 나라는 초등학교와 노인들의 복지관을 통합한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도와주고 아이들은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준다고 합니다. 복지관을 새롭게 짓지 말고 초등학교 한편에 노인들 복지관을 만들어 노인들이 아이들 밥 당번도 하고 청소도 해주고,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같이 함께 달리기도 하는 그런 '초등복지학교'를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전통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장 앞에 목욕탕이 보입니다. 오랜만에 목욕을 하고 갈까 하고 들어갔습니다. 목욕비를 물으니 8,000원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덕분에 목욕탕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목욕비가 많이 올랐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습니다. 탕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노약자와 고혈압 있는 분, 술 드신 분은 5분 이상 입욕을 금합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안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열명 정도 있는데 나이 든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90세가 넘은 것 같습니다. 광천은 아마도 장수마을입니다. 저도 노인인데 여기서는 젊은 편입니다. 역시 목욕은 좋습니다. 목욕하고 바깥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장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았습니다. 가장 좋은 식당을 물으니 시장 안의 백반집을 소개합니다. 여러 가지 반찬이 먹음직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다른 요릿집 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래서 6,000원짜리 백반을 주문했습니다. 싱싱한 조기 큰 것 한 마리가 나오고, 된장국과 김치, 젓갈 그리고 다른 반찬들이 나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생새우를 이곳에서 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광천에서는 생새우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신안에서 올라오는 새우나 강화도에서 오는 새우를 봄철이나 김장철에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식당 안에 손님들 중에서도 새우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새우 말이 나오니 한두 마디 거들어 줍니다. 


식당을 나와 시장에 가서 새우젓을 샀습니다. 1kg에 만원입니다. 그리고 황석어 젓도 2kg에 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나중에 예산으로 돌아와 대형마트에서 가격을 보니 광천 새우젓은 1kg에 16,000원입니다. 황석어 젓은 2kg에 22,000원입니다. 그런데 강화도 새우젓이 2kg에 16,000원, 중국산 새우젓이 2kg에 15,000원, 그리고 신안 새우젓이 1kg에 14,000원 정도 합니다. 광천 새우젓은 가격에서 강화도산과 중국산에 밀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생새우를 가까운 곳에서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겠지요.


광천역으로 돌아가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토굴새우젓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광천의 토굴새우젓이 개발된 것은 한 개인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윤병원이라는 분이  일제 때 만들어진 금광의 폐광에 새우젓을 보관했다가 그것이 잘 숙성된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본격적으로 토굴 새우젓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그 후 토굴에서 숙성된 광천의 새우젓이 맛있다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서 광천 시장까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광천 토굴새우젓이 옛날과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홍성군의회는 광천토굴 새우젓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주4) 아무래도 고 윤병원님과 같이 누군가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장을 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새우젓.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김장문화입니다. 새우젓만큼은 물러 설 수 없고, 진심인 광천의 주민들. 무언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해 봅니다. 조그만 여행이었지만 많은 것을 만나고 갑니다.



주1) 조남민, 「홍주역사문화산책<23> 영혼 울리는 장사익의 음악세계」, <홍성신문>, https://www.h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9302013.10.17

주2) 최명환, 「토굴 숙성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토굴새우젓시장<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market/story/3311, 2024.1.15

주3) 이은주, “광천에 가서 돈 있는 체 하지 말라”던 옛 옹암포구 골목상권」, <홍주포커스>, http://www.hj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53, 2021.5.18

주4) <홍주포커스>, 광천토굴새우젓, 생산 및 유통·시장환경개선 필요"http://www.hj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34, 2023.10.20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사카모토 류이치>와 <백남준> 그리고 박원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