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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Jan 15. 2024

15년 후 광천읍의 마지막 전화

# 서울공화국 예산기획국장실, 전화가 울립니다.


"예, 기획 국장입니다." 

"여보세요. 저 광천읍장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금년도 예산 통지 잘 받았지요?"

"아니, 저희 읍은 이제 예산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예산 필요 없다고요. 예산 더 이상 필요 없고, 사람을 보내주세요."


"무슨 사람을 요? 금년에 복지센터 안 지으실 건가요?"

"아니, 사람이 없는데 그놈의 복지센터는 뭐 하러 자꾸 지어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예산 들여서 지은 청년센터, 여성센터 건물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이제 돈은 그만 주시고 사람을 보내주세요."


"무슨 사람이요?"

"신혼부부 10쌍만 보내주세요."


"신혼부부는 왜요?"

"우리 읍에 아기가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어요. 읍주민 평균나이가 70이에요. 앞으로 3년이면 문 닫습니다."


"그동안 인구소멸지역에 선정되셔서 인구 유입을 위해서 예산을 많이 받지 않으셨나요?"

"아니, 예산만 보내주면 누가 애를 낳아준답니까? 농촌보금자리 아파트도 짓고, 청년 창업센터도 지었는데 누가와요? 아무도 안 와요. 이제 우리 읍은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사람을 보내주세요."


"서울도 신혼부부가 많이 없어요. 시골로 갈 신혼부부는 더더구나 없고요."

"그럼 중년 부부도 좋으니 10쌍만 보내주세요. 학생 있는 부부로요."


"읍장님. 제발 진정하시고...."

"아니 뭐가 진정이요? 10쌍도 안됩니까? 우리 광천에서 서울로 간 부부가 그동안 수천 쌍, 수만 쌍이었습니다."


"참. 그것은 어느 마을이나 그랬습니다. 광천읍만 그런 것은 아니고요."

"아니, 그동안 우리한테 수만 쌍 받아서 뭐 했습니까? 우리는 어디 땅 파서 사람 만듭니까? 정 안되면 초등학생 10명만이라도 보내주세요. 저희들이 잘 키워서 10년 뒤에 보내줄게요. 매년 보내주면 10년 뒤부터는 매년 갚아 나갈게요. 사람으로."


"읍장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만, 요즘 학생들이 시골에 갈려고 하지 않아요. 초등학생들, 중학생, 고등학생 다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 학원도 다니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니 저희들이 사람을 사서 1:1 과외도 시켜주고 잘 키워서 해외 유학까지 보내줄게요. 제발. 초등학생이 없으면 고등학생, 대학생도 좋아요. 아니면 외국에서 입양이라도 받아서 보내주세요."


"서울도 요즘 매년 인구가 30만 명씩 줄어듭니다."

"그래도 서울은 아직 인구가 많잖아요? 아니 10명도 못 빼줍니까?"


"저도 안타깝네요. 아무도 지방으로 갈려고 하지 않으니..... 광천읍 인구는 아직 3천 명 정도 되지요?"

"무슨 3천 명이요?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어요. 지금 1,000명도 안 남았어요. 이제 끝났어요."


"어쨌든 금년까지 예산을 받으시고......"

"사람이 아니면 저희는 예산 필요 없습니다. 희망이 없어요. 더 이상."


"서울도 인구가 줄어서..... 젊은이들이 없습니다."

"사람을 못 보내주시면 저희 주민들이 서울로 모두 올라갈게요."


"......."

"금년에 300명 정도 돌아가시면 600명 남습니다. 차라리 서울에 있는 복지센터나 양로원을 준비해 주세요. 저희들이 광천읍 간판을 내리고 서울로 가서 살게요."


"그동안 복지센터 예산을 많이 보내드렸는데요. 그 건물에 계시면요."

"복지센터 건물만 지어놨지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없는데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요. 저희들이 올라갑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금년 예산은 서울에 있는 복지센터로 보내놓겠습니다."

"참 너무 합니다. 그동안 뭐 했습니까?"


"읍장님도 너무합니다. 그동안 인구소멸 막으라고 보내드린 돈으로 뭐 했습니까? "

"아니 그게 할 소리입니까? 예산만 보내면 인구가 늘어납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요. 다 끝났습니다."


# 광천읍 읍장실, 

'쨍그렁'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읍장 명패가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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