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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인으로 산다는 것

by 시원 Mar 16. 2025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바라본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뒷목이 땅기기 시작한다.

독서대에 책을 올려 본다. 세 페이지 정도 읽으니 신경이 머리를 누르기 시작했고 서서히 승모근과 어깨까지 통증이 번진다.

아, 그럼 누워 볼까 싶어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누워도 천정과 눈을 맞춰 누워 봐도 머리가 구겨진 느낌이 든다.

어떤 자세도 불편하기만 하다.


우리가 몸을 쓰는 방법에는 걷거나 뛰거나 눕거나 앉거나 서거나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건 태어날 때부터 해왔으니 거리낌 없이 자연스레 했던 행동들이다.

그런데 통증인이 되고 보니 내 몸을 내가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내 몸을 조정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고 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입 통증인은 몸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의 안타까움, 아니 서러움에 눈물을 훔치곤 했다.



통증인에게 움직임이란 편한 자세를 찾는 게 아닌 덜 불편하고 덜 아프지 않은 상태를 찾는 과정이었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가 가장 덜 불편한 자세를 찾은 운이 좋은 날에는 그나마 잠들 수 있다는 걸 눈물을 닦으며 알았다.


목디스크라는 병은 참 못마땅하다.

“선생님, 너무너무 아파요. 머리도 아프고, 속은 늘 메스껍고, 팔은 누가 하루 종일 잡아 끄는 것 같고요, 팔꿈치도 콕콕 쑤셔요.” 촉촉해진 두 눈과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의사 선생님께 sos를 요청했다.

“목 디스크라는 게 원래 그래요. 스트레칭 열심히 하고, 평소에 바른 자세 유지하고, 시간 되면 걷기를 해보세요.”

6개월 동안 6명의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은 다 비슷했다.

말을 전하는 순간의 표정, 뉘앙스가 달랐을 뿐 내용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 3가지는 이미 6개월 동안 내가 매일 하는 일이었다.


목디스크는 불치병은 아닌데 불치병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치료법이 없다.

통증이 내 몸을 점령한 후 나는, 더 이상 밥상을 예쁘게 차리지 않았고, 화장을 하지 않았으며, 옷을 사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병원, 집, 동네 공원 이 세 공간만이 내가 유일하게 머무는 곳이었다.


도수치료를 받던 어느 날이었다. 옆 침대에서 치료를 받던 분이 간호사 선생님께 필라테스를 했는데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말하는 대화를 들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잎새처럼 그 소식에 내 귀가 팔랑거렸다.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필라테스 학원에 들렀다.

원장님은 자신을 자세 교정 전문가라 소개했고, 내 증상과 상황을 듣고는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그 자신감에 왠지 모를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했던가.

단 10분의 상담 끝에 바로 6개월 코스로 등록을 하며 제법 큰 액수의 돈을 지불했다.

통증인으로 살아온 6개월 중에 가장 결단력과 추진력이 빛나던 날이었다.


원장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은 첫 번째 수업 후, 두 번째 레슨은 다른 선생님이 지도하는 그룹수업에 참여했다. 신기한 모양의 기구들에 몸을 맡겨 팔과 다리를 찢고 늘렸다.

“조금만 더”, “한번 더”를 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맞춰 한 시간을 불태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라테스로 몸이 나아졌다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그분의 말을 떠올리며 곧 내게도 그렇게 봄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도 사뿐하게 했다.


두 시간이 지났을까.

승모근과 어깨, 그리고 뒷목에서 심상치 않은 통증이 몰려왔다.

안 하던 동작들을 했으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근육이완제, 소염제 등이 들어 있는 약봉지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은 내 통증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이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은 내 몸은 까만 눈물만 쏟아냈다.


“너무너무너무 아프니 제발 뭐라도 해주세요 선생님”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으로 간 나는 두꺼운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마치 죽음 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처럼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은 필라테스는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인데 약해져 있는 나의 근육들은 그걸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팔힘, 복부힘 등 신체 부위에 맞는 힘으로 해야 하는데 초보인 나는 어깨에 힘을 많이 줬을 것이며, 그게 통증을 더욱 악화시킨 것 같다고 했다.

통증이 있는 곳에 약물을 주입한 후 통증이 개선되게 하는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영하 11도의 겨울, 주사실의 까만 가죽 침대는 차가웠고 삑삑 울리는 기계음은 심장을 술렁이게 했다.

살짝 떨리는 입술을 앙하고 다물어가며 주사를 맞았다.


이 날 이후 세 번의 시술을 더 받았지만 통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고대했던 봄은커녕 더 깊고 독하고, 매몰찬 혹한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 주사를 맞은 날, 나는 처방전의 약을 받아오는 대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왔다.


통증인의 삶에는 온기도 생기도 윤기도 없었다.





덧>

지금은 아주 많이 호전되어 통증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과도하게 어깨에 힘을 주는 등의 무리를 하면

약간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쉬거나 마사지를 하면 괜찮아집니다.

이렇게 통증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되기까지 거의 2년이 걸렸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는데

시간이 약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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