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그림도 일본그림이다. 그녀는 한국그림 아니냐며 묻지만 명확히 일본그림이다. 그래서 찻주전자도 아마 일본제품일 게다. . 그저 그녀는 한국거라며 우리에게 차를 권한다. 찻잎은 그녀의 마당에서 따온 나나 잎과 마르미에 그리고 로즈마리다. 정성어린 그녀의 대접에 그저 황송할 뿐이다. 따뜻한 차를 내려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굼금증은 어떻게 자기 전화번호를 알았는지에 있었다. 그녀를 이어준건 벤 쉐멘 키브츠다.
벤 쉐멘 키브츠의 맴버들과의 만남은 따뜻했다. 히브리어로 가르친 최초의 농업학교 벤쉐멘은 이스라엘로 이주해온 시몬 페레스가 15살 쯤 이곳에 살면서 자란 곳이다. 이곳에서 그의 첫사랑 쯔비야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벤 쉐멘 키브츠는 시몬페레스와의 인연 뿐 아니라 아인쉬타인이 보내준 세개의 선물로도 유명하다. 이곳 맴버의 친구였던 아인 슈타인은 이곳에 망원경을 선물하는데 그중 두개는 이곳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박물관에 있다.
70이 넘은 몇몇 맴버들과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부모를 모두 여의고 70년전 7살때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생활한 한나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개척의 산 증인이었다. 투비아 대사의 친척도 만났다. 이스라엘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도 보았다. 우리의 대화가 무르익어갈 무렵
벤쉐멘의 맴버중 한 분에게 남편이 시몬 페레스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페레스의 딸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페레스 딸을 연결해 준건 바로 페레스와 남편이 한국 방문 때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저녁무렵 남편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길래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까 매우 궁금해했다. 벤쉐멘 키브츠에서 알려줬다고 하니 더욱 의아해한다. 아니 도대체 누구길래 자신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줄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약속을 잡고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집이었다. 집에 대문은 없었다. 대신 대여섯개의 카메라가 그의 집 경호를 맡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그녀가 방석을 내놓는다. 앞 마당에 의자가 있는데 의자 위에 깔 방석 쿠션이다.손님이 오면 이렇게 마당 한켠의 의자에 앉아 담화를 나누나 보다. 그녀의 익숙함이 느껴진다. 그녀가 준비한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편안한 자리가 마련이 되었다. 처음 대하는 낯선이에게도 그녀는 친절했다. 이런 모임은 그녀에게 익숙하리라. 딱딱한 분위기는 어느새 마당에 부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였던양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이스라엘 평화를 위해 노력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집트와 요르단 과의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주역으로서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그녀는 우리에게 그녀의 아버지를 소개했다.
"만약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이번 하마스 테러는 안일어났을거야 ." . 네타냐후같은 강경파는 이번 전쟁에 책임이 있다. 이번 테러를 자초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아버지 시몬 페레스보다는 더 좌파에 속한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버지는 중도자였지.
평화를 원했던 그.
티비를 통해 책을 통해 듣고 보았던 시몬 페레스를 그녀의 딸을 통해 만나보았다. 마지막 그의 관이 며칠간 머물렀던 국회 앞 마당에서 찍은 시몬 페레스의 관과 사진을 보여주니 갑자기 슬픔이 몰려오는지 눈을 돌리신다. 그래 여전히 그녀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슬픔이다.
그녀의 영웅 이스라엘의 영웅 시몬 페레스 .위대한 정치인으로 그를 만났다면 그저 우러러볼수 밖에 없는 그이지만 따뜻한 그의 가족을 통해 그를 만나니 고스란히 따뜻한 아버지로서 얼마나 그가 .가정적이었을지 올곧이 느껴진다. 2두마다 한번씩 딸의 집에 와서 샤밧만찬을 했던 그의 식탁과 의자에 앉아 본다. 책을 통해 만난 그가 그렇게 나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다. 그는 그렇게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세상에 꿈을 심어 주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