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새에 고대 3대 도서관 3곳을 방문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터키 페르가몬 그리고 에베소 셀수스 도서관이 그곳이다. 그중에 셀수스 도서관만 그 흔적을 볼수 있고 나머지 두곳은 흔적은 없다. 알렉산드리아는 파피루스를 재료로 페르가몬은 양가죽을 재료로 최고의 도서를 보관하며 고대 최대 도서관으로 기록될수 있었다..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페르기몬 왕국은 당시 명성을 떨친 도시였지만 에베소의 셀수스 도서관은 어떻게 3대 도서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초기 로마시대 때의 소아시아의 수도는 페르가몬이었으나 기원후 129년에 로마가 페르가몬을 통합하면서 아시아 속주가 형성되었고 에베소가 수도가 되었다. 셀수스 도서관이 세워진 때는 135년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무덤 위에 만든 도서관이다.
그럼 바울이.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을 했다고 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바울 당시에는 이 셀죽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란노 서원은 영어로 the lecture hall을 뜻한다. 두란노(tyrannus)는 무엇을 듯하는지도 아직 미지수다. 사람이름인지 학자를 뜻하는지.말이다. 대체로 현재 셀수스 도서관 앞 학자들의 광장이 있어 그 옆 계단이 바로 lecture hall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도한 곳은 오데온인데 그곳에서 낮시간에 바울이 강론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아직 두란노 서원이 에베소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하진 않다.
에베소 항구에 도착한 뱃사람들은 항구에서 가까운 아고라에 물건을 대고 상업을 했을것이다. 근처 유흥업소와 목욕탕등에서 몸을 풀고 가까운 극장에서 연극이나 경기를 즐기기도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2년을 지냈다. 극장에서는 아데미 여신의 조형물을 만드는 은장색이 바울이 그 아데미 여신이 신을 대신할수 없다고 하는 말에 노발 대발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연극장으로 들어갔다. 두시간여를 아데미를 찬양하며 소요를 일으킬 때에 서기장이 그들이 죄없음을 알리며 소동을 잠재우기도 했다.현재 에베소의 극장은 보존이 잘되어있어 자세히 들여다 볼수 있다.
에베소는 아직 18프로 정도만 발굴이 된 상태다.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볼수 있다. 특히 셀수스 도서관과 극장이 인상적이고 유흥가로 가는 안내판이 인상적이다. 발자국과 하트모양을 통해 유흥업소 광고판을 만들었다ㅡ 발크기는 작은거 큰거를 새겨놓아 발크기가 이정도는 되야 즉 미성년자는 갈수 없다는 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