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스라엘 이영란 May 03. 2023

무덤은 역사다 (감람산 유대인 무덤 )

감람산 베긴 수상  묘비 앞에서

이스라엘 베긴 수상과 부인의 무덤

예전에 무덤은 나에겐 무서움의 상징이었다.

유독 어릴때 왜그리도 전설의 고향이라는 티비 프로를 넋을 잃고 보았는지  . 어쨌든 무덤은 내게 무서움의 존재였다. 할아버지 산소도 시골집 과수원 꼭대기에 있어서 오빠 삼촌들과 귀신 놀이? 인지 숨바꼭질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으시시한 그런 느낌이 강했다.

왜 톰소여의 모험에서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우리 남편은 담대한 건지 30여년 전에 히브리대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잠이 오지 않아 히브리대 앞에 있는 영국군 묘지에 앉아 밤을 지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했다. 물론 이스라엘 묘지는 돌로 정갈하게 일렬로 만들어놓았고 그냥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히브리대에서는 도로 옆에 지나다도 볼수 있게 바로 옆에 있어서 공동 묘지라는 느낌보다는 기념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래도 묘진데 참 간큰 남편이다.


감람산 자락에 위치한 세븐 아치 호텔은 요르단군이 점령했던 기간 동안에 (1948-1967)1964년에 지어진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다시 찾고 요르단이 퇴각하면서 이스라엘에 넘어온 호텔이다. 당시 요르단 국왕을 위해 럭셔리하게 장식되있던 방의 가구들은 점령군이 가져간 이후 그 흔적을 알수 없다.


이 감람산 일대는 당시 유대인 묘지가 있었으나 요르단이 점령하면서 무덤을 파헤쳤고 그 자리에 이 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다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 지역을 도로 찾은 이후 유대인들은 다시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묘는 1967년 이후의 것들이다.


묘비 위에는 대부분 누군가의 자녀이며 형제이며 사랑하는 자였다는 것을 써내려갔다. 내 비석에도 그렇게 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덤은 역사다. 특히 이곳에 있는 분들은 테러나 전쟁으로 죽은 자들도 많다. 당시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분들인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히브리어를 부활시키신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가족 묘는 따로 문을 만들어 보존해두었다. 얼마나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에게만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3대까지는 기억되어도 4대째 가면 얼굴도 못보니 잊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이상을 위해 국민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들은 무덤 위에 매년 추모하는  행렬이 있을 정도로 오랜세월 기억된다. .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위에 추모하며  올려놓은 돌들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대중화한 제롬도 자신의 옆에 해골을 두고 번역에 몰두했다고 한다. 마지막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죽기 전까지 그 작업을 끝내고자 했던 강한 의지였다고 한다.


파주 시댁에는 가족묘가 있다. 남편의 할아버지 대부터 같이 모시고 있다. 육촌 당숙 까지도 서로 친한 분들이다. 매년 8월 15일에는 잔디를 뽑고 모든 가족이 모여 함께 조상을 찾아뵌다. 그리고 모두 같이 식사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있기에 거의 참여를 못하지만 대부분 장남이 이 일을 하게 된다.


남편은 파주에 갈 때마다 부모님 묘를 찾아뵈며 아이들에게 인사시킨다. 무서움의 대상이던 무덤이 내게 점점 정감있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는 그냥 소박하다. 그저 우리 아이들 가족에게만 기억되도 좋다.    다른 분들의 묘비를 보며 나는 몇명의 사람들에게 기억될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나도 남에게 기억될수 있는 의미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옛날 같으면 50대에 이미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를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위한 삶 보다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통해 그렇게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기억되어야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신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