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배낭여행이란
대망의 피라미드를 보러 가는 날. 우리는 생각보다 쾌적하고 시스템이 철저한 이집트의 지하철에 놀라며 무사히 기자역에 도착했다. 기자역에서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서는 미니버스를 흥정해서 타고 가야 하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온갖 호객행위와 줄지어 있는 미니버스 기사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가격을 물어보면 일단 타라고 우겨 댔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니버스는 흥정을 잘하면 5파운드에도 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들은 도저히 10파운드에서 내려줄 기미가 안보였다. 우리는 단호한 척하며 미니버스 있는 곳을 한 바퀴나 돌았지만 흥정에 실패한 채 어리바리한 여행객이 되어버렸다.
내려가지 않는 가격에 당황하고 있던 와중 어떤 아저씨가 우리에게 9파운드를 제안했고, 우리는 1파운드라도 깎자는 생각에 냉큼 문이 뚫린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떠나려고 했더니 손님을 낚아채 화난 다른 기사 아저씨들이 버스를 발로 차고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그 기사 아저씨가 초짜여서 그들만의 룰을 깨 버린 듯했다. 문이 없는 버스라 모래 바람이 잔뜩 들어왔지만 도로 사이로 보이는 웅장한 피라미드의 자태에 설렘이 가득했다.
피라미드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호객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이제 우리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호객꾼이 여행쌤께 터번을 둘러주며 돈을 요구했지만, 정말로 돈이 한 푼도 없으셨던 쌤 덕분에 우리는 스카프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스카프는 아주 용이하게 쓰인다.) 들어간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더 크고 휑했다. 정말 관리가 하나도 안되어 있었다. 모래로 가득한 허허벌판에 듬성듬성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며 고대의 소중한 유적지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여긴 이집트다.
피라미드로 걸어가는 와중 점점 호객꾼들이 따라붙었다. 날씨는 덥고, 상당히 푹푹 빠지는 모래와 낙타 똥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호객꾼들이 따라오니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주 끈질긴 호객꾼 한 명이 재우에게 터번도 씌워주고, 낙타랑 사진도 찍게 하고, 피라미드 사진 찍기 좋은 스팟이 있다며 자꾸 귀찮게 굴었다. 호객꾼에게 지친 재우가 지갑에 있던 천 원을 꺼내서 이게 1달러라고 호객꾼 손에 쥐여주주 겨우 호객꾼을 퇴치할 수 있었다. 그래도 끈질긴 호객꾼과 아랍상 재우 덕분에 좋은 피라미드 사진 스팟을 알아냈다!^^
멀리서 본 피라미드는 상당히 웅장했는데, 가까이 갈 다가수록 실체가 드러났다. 완벽한 삼각형인 줄 알았던 피라미드는 세월이 흘러 조금은 울퉁불퉁해졌다. 그리고 피라미드 밑에는 사람들이 왔다간 흔적과 글들로 가득했다. 유적지에 낙서라니. 이집트는 참 신기한 나라다. 그렇지만 다가갈수록 '헉' 소리 나는 위압감이 존재했다.
피라미드를 다 구경하고, 피라미드 돌에 앉아서 쉬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앉아서 보니 피라미드는 훨씬 컸고, 대체 어떻게 이렇게 큰 무덤을 만들 생각을 했으며,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지게 되었다. 여러 상념에 빠진 채 피라미드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곳곳에 익숙한 자태의 새들이 앉아있었다. 바로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국적을 불문하고 있는 건가... 피라미드 층층마다 앉아있는 비둘기를 보며 진절머리가 났다. 피라미드는 사실 파라오의 영원한 집일 뿐만 아니라 비둘기의 안식처였구나 싶을 만큼 비둘기가 엄청 많이 앉아있었다. 생긴 것도 한국 비둘기랑 비슷해서 약간 PTSD가 오는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피라미드를 들고 있는 사진과 밟는 사진을 찍었는데, 다들 적극적으로 찍겠다고 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찍어주었다. 열심히 찍고 있는 와중 한 외국 분이 오셔서 ‘Can I take a stupid picture?’라고 물어보셔서 그분도 피라미드 밟는 사진을 찍어드렸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올 때보다 더 싸게 7파운드에 미니버스를 타고 돌아왔는데, 엄청나게 인싸이신 기사님을 만나서 기사님의 아는 지인분들이 버스에 한 두 명 늘었고, 지인분들과 함께 문이 없는 미니버스를 탔다. 이집트는 역시 개방적이야. 물리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