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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낑깡 7시간전

5. 여행자들의 블랙홀, 내 고향 다합

스무 살의 배낭여행, 중동으로 떠나다


여행지마다 각자 담당하던 도시가 있었는데, 다합은 내가 담당한 도시였다. 자기가 담당하게 된 도시는 기본적인 교통이나, 할 것 등을 찾아두어야 했고, 그 도시에서 여행할 때는 총괄 책임자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나름의 책임감 때문인지 온갖 유튜브와 자료를 섭렵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그럼에도 다합으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카이로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다합으로 갔는데, 나이트 버스가 타야 하는 시간에 제 때 도착하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분명 시간이 지났는데 왜 계속 안 오는지.. 불안한 마음에 주위 현지인들에게 계속 물어봤지만 10분 뒤에 온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 아마 이집트 타임이 시작된 것이리라. 시간도 자기 마음대로, 그냥 다 자기 마음대로임. '이집트 진짜..' 마음대로 되는 건 없고, 지쳐가는 친구들을 보며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리고 도착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겨우 버스가 도착했다. 



도착한 버스는 배낭이 많다는 이유로 돈을 요구했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흥정을 통해 나름 저렴한 가격에 배낭을 맡길 수 있었다. 배낭을 맡기고 탄 야간버스는 생각한 것보다 이집트 치고 괜찮은 거 같으면서도 안 괜찮았다. 여락이들의 유튜브 채널 보면서 야간버스에 대한 로망을 잔뜩 품고 있었는데, "이게 야간버스..?" 기대한 야간버스는 그냥 한국의 빨간 버스랑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점... 화장실 역시 저길 들어갈 바에는 참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게 하는 곳이었다. 진짜 숨참고 들어가도 냄새나는 위생상태..


나이트 버스를 드디어 타고 맘 놓고 자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1) 무시할 수 없는 이집트 드라마 소리

2) 계속되는 짐 검사와 여권검사

주기적으로 깨워서 여권 검사를 하고, 새벽에는 추운데 덜덜 떨면서 짐도 다 내려서 가방까지 다 확인했다. 나이트 버스였지만, 잠은 제대로 못 잤다. 


다합에 도착하고 나서는 숙소 찾는 팀, ATM기 갈 팀, 짐 지키는 팀 이렇게 세 팀으로 나눠서 움직였다. 나와 현승이, 그리고 재우가 숙소 담당이 되어서 다합에 묵을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우리의 철칙은 직접 발로 뛰는 거다. 중동은 부르는 값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는 새벽에 도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했지만, 이번에는 예약하지 않고, 발품 팔아서 숙소를 구했다.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숙소를 찾아봤는데, 저렴한데 괜찮은 숙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5-6곳 이상을 돌면서 흥정한 결과, 걱정한 것에 비해 아주 좋은 숙소를 찾게 되었다. <Gina Motel>이라는 곳에서 머물렀는데, 간단한 공용 주방, 깨끗한 침구류, 멋진 뷰의 옥상 그리고 사장 한나까지 너무 친절하다. 카이로 숙소가 정말 최악이어서 그런지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환상적인 곳이었다. 숙소까지 찾고 나서 돌아본 다합은 환상적이었다. 카이로는 정신없고 도시 느낌이 강했다면, 다합은 휴양지 느낌이 강했다. 시원한 파란색으로 물든 홍해바다와 들뜬 사람들, 화이트 계열의 건물들,, 몽글몽글한 느낌이 났다. 


밤이 되면 다합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노란색 은은한 조명 아래 현지 느낌 물씬 나는 소품들과 옷들로 가득했고, 밤공기와 밤바다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다합의 밤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런 다합의 밤에 동참하고자 하원이랑 시현이랑 아이스크림을 사서 야무지게 먹었다. 이 작은 행복이 얼마나 큰지! 바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가, 옆에 있던 현지인 분들과 게임을 했다. 각자 가지고 있던 소지품 하나씩 꺼내서 현지인 분께 물건 하나를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자기 소지품이 걸리면 바닷가에 들어가서 종아리까지 담그고 오기를 했다. 근데.. 어라? 나랑 시현이가 걸렸다. 몸을 적시는 건 싫었는데.. 그래도 낭만 있다. 다합 밤바다.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나이 또래가 비슷한 학생이셔서 그런지 함께 재밌게 웃고 떠들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정신없는 카이로에서 벗어나 다합에 오니, 이 휴양지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다. 다합에 온 첫날밤이니까! 다합에 온 걸 더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숙소에 있는 루프탑에 올라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교도, 미금도 아닌 이집트 다합에서 우리가 놀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마치 청춘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이집트는 물가가 싸서, 과일도 정말 쌌다. 그 덕에 우리는 바나나와 석류를 잔뜩 사서 까먹으면서 끝나지 않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때 먹은 석류도 바나나도 진짜 너무 맛있었다.. 


과일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약간의 스릴을 위해 내가 가져온 트럼프 카드로 원카드와 도둑 잡기를 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이 트럼프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거지 당번. 벌칙 당번. 심심할 때 등 계속 게임으로 정한다ㅋㅋㅋ


그렇게 놀 던 와중, 문뜩 이 순간을 눈에 가득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분명 그리워할 순간일 테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도 나는 다합에서의 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기에 순간순간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했달까. 돌이켜봐도 그 밤은 절대 잊지 못할 나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렸다. 다합은 어쩌면 저 멀리 있는 내 고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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