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식당에서든 거리에서든,
혹은 온라인 공간에서조차 예상치 못한 무례함을 마주칠 때가 있다.
한쪽 말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
줄을 무시한 채 먼저 끼어드는 손,
농담인지 모욕인지 알 수 없는 말투,
혹은, 말이 아니라도 그 사람의 시선이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기운.
그런 순간, 어떤 사람은 즉각 반응한다.
표정을 굳히거나, 단호하게 말을 건네거나, 때로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경계를 세운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나간다.
눈을 한 번 피하고,
입술을 꾹 다물고,
속으로 몇 번이고 하고 싶은 말을 되뇌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후자 쪽 사람들을 더 많이 본다.
혹은, 우리가 그 ‘침묵하는 사람’이었을 때도 많다.
왜 우리는 침묵할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가만히 있었어?"
"왜 한마디도 안 했어?"
"그런 말 듣고도 참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안다.
그 순간,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단순한 ‘참음’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상황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아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폭주할 걸 알아서,
혹은, 그 자리의 분위기나 역할이 주는 책임감 때문에—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서’ 침묵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고려했기 때문에,
말 대신 침묵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침묵은 무기이거나, 방패이거나
침묵을 힘으로 쓸 수 있을까?
그럴 때도 있다.
말을 섣불리 내뱉는 대신
상대의 무례함을 스스로 드러내게 두는 것,
그 말의 무게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기다리는 것.
그건 일종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또 어떤 침묵은 방패에 가깝다.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
이해받지 못할 것을 이미 경험한 사람,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지키기 위해 침묵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무례함 앞에서 조용히 있던 사람을
무기력하게 보거나, 수동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그저 그 순간,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화를 내지 않았다고 화가 나지 않은 게 아니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말 대신 삼킨 감정들은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오르고,
잠들기 전 귓가에 맴돌고,
때로는 몇 날 며칠 마음속을 헤매기도 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때로 아주 작다
“그 자리에서 한마디 했어야지.”
“그렇게 당하고도 왜 가만 있었어?”
이런 말들은 침묵했던 사람에게
또 한 번의 무례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어쩌면
“그 상황,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잘 견뎠어.”
이런, 짧은 공감 한 줄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누군가의 ‘이해받음’은
새로운 말문을 열게 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말 대신, 마음을 읽어주는 시간
무례함을 마주쳤을 때
모두가 용기를 내 대응하지는 못한다.
그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추슬렀던 침묵의 힘,
그 안에서 지켜낸 마음,
조용한 인내의 무게가 더 크기도 하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 순간 말이 없었다면,
그 안을 들여다봐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말 없이 지켜낸 것들이, 사실은 가장 큰 싸움이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