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을 실망하더라도 1번의 설렘을 포기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은근히 단호하게.
사실 기대라는 건 좋은 거잖아.
무언가를 바라고, 마음을 걸고,
그만큼 설렐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으려 애쓴다.
작은 일에도, 사람 사이에서도.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줄어드니까.
‘익숙함’이 된 방어기제
기대를 품는 일은, 곧 상처받을 가능성을 품는 일이기도 하다.
실망과 상처를 한두 번 겪고 나면, 기대 자체를 조심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뜨면, 스스로를 잡는다.
“아냐, 괜히 기대하지 말자. 괜히 또 속상하잖아.”
그리고는 애써 무심한 척, 바라는 게 없는 척하게 된다.
그런 척이 익숙해질수록 마음의 안쪽은 더 조용히 젖어간다.
정말 기대하지 않는 걸까?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걸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건,
어쩌면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너무 자주, 너무 깊이 실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것일 뿐.
그 기대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그저 말하지 않을 뿐,
그저 드러내지 않을 뿐,
속으로는 여전히 바라본다.
“이번엔 조금 다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말끝을 흐리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살짝 걸어잠근다.
애쓰는 마음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은
사실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감추는 포장지 같은 거다.
상처받기 싫고,
혼자 서운한 마음 안고 돌아서기 싫고,
또다시 ‘혼자 너무 몰입했나’ 싶은 자책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애쓰는 마음 뒤에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안기고 싶었던,
조금은 기대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조금은 안아줄 수 있었으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아도 된다.
“왜 또 기대했을까”
“왜 또 서운한 걸까”
이런 말보다는,
“그럴 수 있지. 그만큼 네가 마음을 준 거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보는 건 어떨까.
기대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진짜 바라는 건
큰 보상도, 거창한 말도 아니라
그저 “네 마음 알아. 수고했어.”라는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
기대를 포기하지 않아도 돼.
기대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우리의 따뜻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