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꾸만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마음들에 대하여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요?”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는 사람들.
그 말 안에는, 이미 꽤 오래 스스로를 책망해온 흔적이 묻어 있다.
예민하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때때로 ‘부정적인 성격’으로 치환되곤 한다.
“예민해서 피곤해.”
“괜히 감정 소모하게 만들어.”
그런 말들이 무심히 던져지고 나면,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의 감정 반응을 ‘숨겨야 할 무언가’로 여기게 된다.
예민함은 감정의 풍부함에서 비롯된다.
복잡한 감정을 다채롭게 느끼고,
관계의 결을 민감하게 감지하며,
말과 말 사이에 숨어 있는 의도를 꿰뚫어본다.
문제는, 그 예민함이 곧 자책의 이유가 될 때다.
감정을 느낀 것보다,
‘이걸 느낀 내가 이상한가’라는 의심이 더 빨리 찾아온다.
예민함을 자책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변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고,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감정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려 애쓴다.
그런데도 어떤 감정은,
애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서운함, 불편함, 당황스러움…
그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감정을 덮는다.
그 말 안에는
“나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은 불편한 것뿐 아니라
섬세한 아름다움도 더 깊이 느낀다.
햇살이 벽에 번지는 결을 오래 바라보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서 진심을 더 빨리 감지하고,
작은 다정함에도 오래 머문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
그 넓이 때문에 삶의 울림이 더 크고,
관계의 균열도 더 또렷하게 감지하게 된다.
그러니, 예민함은
결코 모자람이나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나는 예민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책망하는 이들에게
감정을 정리해보라고 권하는 대신
먼저 “그 마음, 어떤 느낌이었나요?”라고 묻는다.
감정을 다듬기보다
그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사실은 내가 상처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아프고 속상했어요.”
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순간부터
마음이 아주 조금, 풀리기 시작한다.
이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때때로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걸,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걸
조금씩 배워나가는 것.
그게 자책을 멈추는 첫걸음이다.
오늘도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그 질문 뒤에 숨어 있는 건
사실, 더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분명, 괜찮다.
그리고 다정하게 지켜볼 만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