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은 주소가 없다
우리는 늘 먼 곳을 본다.
기적은 지평선 너머에서 올 거라고.
하지만 그 사람은 창가의 의자에서 일어난다.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쪽.
도서관의 먼지 속에서 종이 냄새가 피어오를 때,
한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내 옆을 비켜 주는 손.
교무실의 소음 사이, 종이컵 커피 하나를
말없이 내려 주는 오후의 작은 별.
시장에서는 뜨거운 빵을 반으로 갈라
뜨거움까지 나누어 주는 할머니가 있고,
버스에서는 자리 하나의 무게로
하루의 균형을 바로잡는 청년이 있다.
국경의 줄에서도 귀인은 보인다.
낯선 언어의 문턱에서 아이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주는 직원,
그 한 번의 호명으로 눈물이 멈춘다.
병원 대기실, 비상구 앞, 복도 끝.
“괜찮아요”라는 말이 다리를 놓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물살을 바꾼다.
세상은 그렇게, 가벼워지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그 사람이 된다.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웃는 일로 하루의 날씨를 바꾸는 사람.
그 순간, 나의 좌표가 누군가의 북극성이 된다.
귀인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주소가 없다. 신호가 있을 뿐이다.
눈을 들어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
작은 친절이 점멸을 멈추고
하나의 길이 켜지는 신호.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길 표지다.
서랍 속에 접어 둔 미소를 꺼내어
첫인사처럼 펼쳐 보이라.
세상은 그만큼 밝아지고,
그 밝음이 다음 사람의 귀인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