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정기학술대회에 앉아 있습니다
오늘 저는 경상국립대학교 남명학관 남명홀에서 열린
「경남도청 이전 100주년: 회고와 전망」 진주학연구센터 제6회 정기학술대회에 앉아 있습니다.
발표를 듣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청이 떠난 지 100년,
진주는 정말 ‘무언가를 잃기만 한 도시’였을까?”
오늘 학술대회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행정의 도시에서, 창조적 문화도시 진주로”라는 긴 여정을 함께 그려보는 자리였습니다.
1. 도청이 떠난 도시에서, 새로운 질문을 묻는 도시로
100년 전,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떠났을 때
진주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행정 수도’의 자리를 내어준 도시는
한동안 “중심에서 밀려난 도시”,
“예전만 못한 도시”로 불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역사는 ‘직책’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
도청 청사가 떠난 자리에는
다른 것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남강의 풍경을 따라 이어진 시민들의 기억,
골목마다 쌓인 이야기,
학교와 연구소, 문화예술단체가 함께 쌓아 온 실험들 말입니다.
2. 진주를 떠받쳐 온 보이지 않는 뿌리들
오늘 발표와 토론에서 반복해 등장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의병의 도시 진주
형평운동의 도시 진주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 전통
경상국립대학교와 지역 학교들이 쌓아 온 지식과 인재들
시민사회·문화예술단체가 오랜 시간 만들어 온 크고 작은 실험들
겉으로 보면 각자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줄로 이어집니다.
“힘없는 사람 편에 서려했던 역사,
기억을 잊지 않으려 했던 노력,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교육과 실천.”
행정의 중심은 잃었을지 몰라도
진주는 지난 100년 동안
‘기억과 시민성’이라는 깊은 뿌리를 길러 왔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이 뿌리들을 한 번에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름과 방향입니다.
3. “행정의 도시”에서 “창조적 문화도시 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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