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非正規職) 교사 27년, ‘끝(終)’이 아니라

‘다음(次)’을 배우는 중입니다

by 다움 김종훈 살뜻한 이웃

비정규직(非正規職) 교사 27년, ‘끝(終)’이 아니라 ‘다음(次)’을 배우는 중입니다

—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最善)

(이 글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학교·기관·지명·단체의 일부를 ‘○○’로 처리하거나 범주화하여 서술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삶(生活)이 지나온 결과의 촘촘함은 가능한 한 그대로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제 이력을 “여러 곳을 거친 경력”이라 부를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여러 교무실을 건넜고, 많은 이름표를 갈아 끼웠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제가 오래 숨겨 둔 감정이 함께 따라옵니다.

한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지 못한 서러움.

그리고 끝끝내 교육(敎育)을 놓지 않으려 했던 끈질긴 생존(生存)입니다.

비정규직(非正規職)의 시간은 “다음 학기”가 아니라 “이번 학기”에 매달립니다.

교실의 종은 매일 울리는데, 제 삶의 종은 늘 어딘가에서 ‘종료(終了)’도 함께 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종소리를 들으며 저는 배웠습니다.

“안정(安定)이라는 이름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해도,

사람 쪽으로 기울어진 마음(心)은 끝내 길을 만든다.”


1. 나는 ‘한 직장’을 옮긴 것이 아니라, ‘교육의 입구’를 지켜 왔다

1999년, 저는 교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칠판과 분필, 학생들의 눈빛, 수행평가(遂行評價), 생활기록부(生活記錄簿), 시험지, 그리고 반성문—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상담일지(相談日誌)까지.

교육이라는 것의 질감을 손바닥으로 처음 배운 때였습니다.

하지만 제 교직(敎職)의 궤적은 한 학교의 교무실에서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보다, 늘 계약서의 날짜에 묶인 채 흘러왔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사회과 교사였고,

어떤 시기에는 도덕·토론·진로·진학을 맡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상담(相談)의 자리에서 학생과 가정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학교 밖에서 ‘교육을 돕는 일’을 하며, 학생들의 삶이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더 멀리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렇게 많이 옮겨 다니면, 힘들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렇게 많은 자리를 옮겼는데도 한 번도 “교육을 떠났다”라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저는 직장을 옮긴 것이 아니라, 교육의 여러 입구를 돌아가며 지켜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학교에서만 교사였던 사람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

성적표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균열(龜裂)이 있다는 사실,

한 학생의 불안(不安)은 한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家庭), 한 지역(地域), 한 시대(時代)의 공기라는 사실—그것을 저는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2. 비정규직이라는 말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감각(感覺)’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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