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새벽, 이 물음이 조용히 마음을 두드렸다.
가난하더라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끝내 사람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작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길 위에서 헤맨다. 그럼에도 오늘, 이렇게 정리해 본다.
1. 양심에 따르는 삶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편한 길보다 바른 길을 고른다.
2.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는 삶
다른 이의 눈물을 ‘내 일’처럼 여긴다. 공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멈춰 듣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3. 실수와 실패 앞에서 존엄을 지키는 삶
넘어져도 부끄러워만 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는 용기 속에 사람다움이 깃든다.
어느 밤, 인생의 무게에 눌려 혼자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오늘, 좀 괜찮으셨어요?”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존재의 온기로 사람을 살리는 이—그를 나는 ‘살 뜻한 이웃’이라 부르고 싶다.
살 뜻하다는 말은,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다시 살고 싶어 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누구의 살 뜻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웃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먼저 손 내미는 용기, 안부를 묻는 습관, 함께 걷는 시간을 통해 만들어 가는 관계의 빛이다.
“아첨지언소인(阿諂之言小人), 소인지언불청(小人之言不聽).” "아첨하는 말을 하는 자는 소인이다. 소인의 말은 듣지 말라. 의역하면 아첨으로 꾸민 말은 소인의 언사다. 그런 말은 가려듣고 따라가지 말라"라고 배워집니다.
달콤한 말은 잠시 마음을 붕뜨게 하지만, 끝내 관계의 바탕을 얇게 만들고 신뢰를 새게 합니다. 사람답게 살고 ‘살 뜻한 이웃’이 되려면, 편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심의 언어로 서로를 세워야 합니다. 칭찬은 사실과 근거를 붙여 구체적으로(무엇을, 왜 잘했는지), 충언은 존중의 톤으로(사실 → 공감 → 제안의 순서) 건네세요. 그렇게 말이 단단해질 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첨 대신 진심을, 비위 맞춤 대신 신뢰를 건네고 있는가?
작은 실천이 살 뜻한 이웃의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결국 우리의 품이 된다.
나는 완성된 삶을 살지 못한다. 어떤 날은 주저앉고, 어떤 날은 외롭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은 혼자서는 갈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함께 웃고 울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답게, 살 뜻하게 살아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하루는 사람다운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당신 곁에는, 그리고 당신 안에는 살 뜻한 이웃이 있는가?
혹 아직 없다면, 괜찮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그 마음 자체가 벌써 누군가의 살 뜻한 이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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